'표절 논란'으로 칩거에 들어갔던 신경숙 소설가(56)가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단편소설 '전설'에서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문단 안팎에서 치열한 논란이 벌어진 지 4년 만이다.
창작과비평사는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실었다고 23일 밝혔다. 신 작가의 새 소설 제목은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로 분량은 중편이다. 창비는 "가까웠던 친구에게 닥친 비극적인 소식에 절망하는 '나'와 친구의 교감을 통해 삶과 죽음, 희망과 고통의 의미를 곡진하고 돌아보는 이야기"라며 "4년의 공백 끝에 나온 작품으로 주목에 값한다"고 설명했다.
창비는 이와 함께 '작품을 발표하며'라고 적힌, 신경숙 소설가의 글을 함께 공개했다.
우선 신 작가는 동료들과 독자들의 염려와 걱정을 우려하는 문장으로 침묵을 깼다. 그는 "지난 4년은 30년 넘게 이어진 제 글쓰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본 길고 쓰라린 시간이었다. 벼락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던 그 시절 많은 비판과 질책을 받으면서도 제일 마음이 쓰였던 것은 어디선가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든든했던 동료들과, 제 작품을 아끼고 사랑해준 동지 같았던 독자들께 크나큰 염려와 걱정을 끼쳤다는 점"이라며 "그것이 가장 아프고 쓰라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표절 논란에 대해선 "중대한 실수"으로 규정했다. 신 작가는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저의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4년 동안 줄곧 혼잣말을 해왔는데 '걱정을 끼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였다. 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해온 분들께도 마찬가지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 신 작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비판의 글을 쓰게 하는 대상으로 혼란과 고통을 드렸다. 모두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덧붙였다.
작품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다짐은 명확하게 선언했다.
신 작가는 "이후의 시간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저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며 제 누추해진 책상을 지킬 것"이라며 "제 자리에서 글을 쓰는 일로 다시 부서진 것들을 고치고, 떠내려가는 것들을 건져내고, 닫힌 문은 열고,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고, 메마른 것들에게 물을 주려고 한다. 이것이 앞으로의 저의 소박한 꿈이며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간지에 새 소설을 싣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신 작가는 "오랜만에 문학계간지의 교정지를 대하니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될 독자들의 눈빛과 음성이 떠오른다"며 "제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차근차근 글을 쓰고 또 써서 저에게 주어진 과분한 기대와 관심, 많은 실망과 염려에 대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겠다"고 적었다.
현재 법적으로 신경숙 소설가는 표절 논란에 대해 고등법원에서 작년 말 승소한 상태다. 오길순 수필가가 2001년 발표한 5쪽 분량의 수필 '사모곡'을 신경숙 소설가가 '엄마를 부탁해'에서 표절했다며 출판금지 소송을 냈고 작년 7월 1심은 신 작가의 손을 들어준 상태였다. 1심과 마참가지로 서울고법 민사4부(홍승면 부장판사)는 오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사모곡' 표절 논란에 앞서 이응준 소설가가 제가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표절 논란은 신 작가의 독자들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다음은 신경숙 작가가 보내온 '작품을 발표하며'의 전문이다.
[작품을 발표하며]
오랜만에 새 작품을 발표합니다.
지난 4년은 30년 넘게 이어진 제 글쓰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본 길고 쓰라린 시간이었습니다.
벼락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던 그 시절 많은 비판과 질책을 받으면서도 제일 마음이 쓰였던 것은 어디선가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든든했던 동료들과, 제 작품을 아끼고 사랑해준 동지 같았던 독자들께 크나큰 염려와 걱정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가장 아프고 쓰라렸습니다.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저의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4년 동안 줄곧 혼잣말을 해왔는데 걱정을 끼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였습니다. 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해온 분들께도 마찬가지 마음입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비판의 글을 쓰게 하는 대상으로 혼란과 고통을 드렸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이고 불찰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제가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분들 가운데 여럿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앞에 망연자실했습니다. 새삼스럽게 작은 호의, 내민 손, 내쳐진 것들의 사회적 의미,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글쓰기에 의해 많은 가치들이 새롭게 무장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도 조용히 지켜봤습니다. 감사하고 설레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이후의 시간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저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며 제 누추해진 책상을 지킬 것입니다. 제 자리에서 글을 쓰는 일로 다시 부서진 것들을 고치고, 떠내려가는 것들을 건져내고, 닫힌 문은 열고,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고, 메마른 것들에게 물을 주려고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저의 소박한 꿈이며 계획입니다.
오랜만에 문학계간지의 교정지를 대하니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될 독자들의 눈빛과 음성이 떠오릅니다. 제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차근차근 글을 쓰고 또써서 저에게 주어진 과분한 기대와 관심, 많은 실망과 염려에 대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겠습니다.
2019년 5월 신경숙 드림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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