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하루를 마무리한 직장인들이 가볍게 한 잔하며 힐링하는 편의점. 맥주 한 캔에 과자 한 봉지를 곁들이지만 안주는 단조롭고 맥주 종류는 한정돼 갈증은 여전하다.
그 부족함을 채워줄 곳이 바로 ‘가맥집’.
전주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가맥’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동네 슈퍼에서 저렴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즐기는 가맥은 전주에서 태동한 전라북도의 독특한 술 문화다. 가맥의 매력은 단연 저렴한 가격과 슈퍼 주인이 차려주는 맛깔나는 안주다.
이제 가맥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즐길 수 있다. 동네에 하나쯤 있을 법한 평범한 슈퍼처럼 보이지만 맥주 덕후들의 심장을 뛰게 할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반전 매력의 가맥 명소를 소개해본다.
◆경리단길 우리슈퍼 = 겉은 슈퍼, 안은 세계 맥주 천국!
북적이는 경리단길을 지나 옆 골목 ‘경리단 사잇길’로 들어서면 허름한 슈퍼 하나가 눈에 띈다. 슈퍼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수백, 수천 개는 돼 보이는 병뚜껑들, 바닥에 길게 늘어선 빈 맥주병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우리슈퍼에 진열된 맥주/사진=MBN
맥주 덕후들의 성지로 이미 잘 알려진 이 곳은 단 10평 크기의 가게에 대형 냉장고 10여 개가 벽면을 둘러싸고 있다. 구스, IPA, 크롬바커 등 수입맥주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마셔 화제가 됐던 국내 수제맥주 중소기업 세븐브로이의 달서맥주, 강서맥주 등 300여 가지의 맥주를 구비하고 있다. 가격은 대형 할인마트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하기까지 하다.
평범한 동네 슈퍼였던 이 곳은 경리단길이 뜨기 시작하며 외국인 방문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수입 맥주를 적극 매입했다고.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지금은 과자와 견과류와 같은 간단한 안주와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세계 맥주 천국’이 됐다.
우리슈퍼에서 가맥을 즐기는 사람들/사진=MBN
우리슈퍼 사장 김영숙 씨는 “이 곳은 모든 것이 셀프다. 원하는 맥주와 과자를 골라 계산하고 알아서 자리를 잡고 즐기면 된다. 떠날 때는 분리수거도 스스로 해야 한다”, “자유와 질서가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천호동 유미마트 = 육사시미가 안주로? 정육점까지 갖춘 가맥집
육사시미(왼쪽) 유미 정육점(오른쪽)/사진=MBN
요리 안주가 없는 우리슈퍼에 살짝 실망했다면, 이 곳을 추천한다. 유미마트는 정육점을 같이 하는 동네슈퍼였지만 지금은 맥주 덕후들을 천호동으로 부르는 ‘맥주의 성지’가 됐다.
정육점에서 갓 만든 신선한 육사시미와 찹스테이크는 물론 피자와 치킨, 떡볶이, 라면까지 다양한 안주를 즐길 수 있는 가맥집이다.
유미마트 가게 모습/사진=MBN
맥주 또한 다양하다. 국내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해외 크래프트 비어가 가득한 맥주 냉장고는 맥덕들의 마음을 절로 설레게 한다. 사장님이 직접 주조한 유미비어 또한 인기다.
유미마트의 시작이 된 네덜란드 맥주 ‘바바리안’/사진=MBN
유미마트 대표 송재준 씨는 우연히 네덜란드 맥주 ‘바바리안’에 매료됐고 슈퍼에서 팔기 시작했다. 맥주 마니아들이 단번에 알아봤고 하나 둘 수입맥주를 들이기 시작한 게 지금의 유미마트가 된 것.
유미마트 안주/사진=MBN
유미마트는 맥주도, 안주도 매력 있지만 사장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입담이 제일이다. 손님들과 늘 주먹인사를 나누는 사장님은 안주가 나올 때마다 “질과 양으로 승부한다!”, 맥주가 나올 때는 “맥주는 예술이다!”하고 외친다.
◆종로 관수동 서울식품 = 종로 한복판에서 즐기는 오리지널 가맥
서울식품 가게 모습/사진=MBN
주머니 가벼운 이들을 위한 가맥집. 오래된 동네 슈퍼를 연상케 하는 허름한 외관과 글자 몇 개가 떨어진 간판이 오랜 세월을 가늠케 한다. 가게 1층은 과자와 라면, 담배 등을 파는 슈퍼다. 슈퍼 한 쪽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뚝딱뚝딱 안주를 만들어내는 조그만 주방이 딸려있다.
서울식품 가게 모습과 안주/사진=MBN
2층에 올라가니 “아휴, 이 맛없는 곳에 왜 왔어”하며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이 반겨준다. 이 곳의 진짜 매력은 저렴한 가격과 맛있는 안주. 소주와 막걸리가 단돈 2,000원, 맥주가 3,000원이다. 커다란 땡초부추전은 4,000원, 둘이 먹기에도 벅찬 양의 두부김치는 8,000원이다.
저렴한 가격의 비결은 인건비가 없다는 것. 냉장고에서 원하는 술을 알아서 꺼내 마시고, 컵과 수저도 스스로 가져다 쓰면 된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진짜 가맥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봄이 찾아오는 춘삼월. 가맥집 특유의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 저렴한 가격으로 길맥, 가맥을 즐겨보는건 어떨까.
[MBN 온라인뉴스팀 백율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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