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도 아버지 따라 색소폰을 시작했어요. 제가 열 살 때 아버지가 직접 배우려고 색소폰을 구매하셨죠. 여섯살때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이 때 색소폰의 생생한(physical) 음색에 푹 빠졌죠."
느긋하면서도 화려하게 뿜어나오는 소리. 색소폰은 중년 남성들의 로망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샤 파테예바(28)는 색소폰은 고독한 중년남성만이 즐기는 악기도, 재즈와 대중음악에만 특화된 악기도 아니라고 말한다.
크림반도 케르치 출신인 파테예바는 재즈에서 주로 연주되는 색소폰으로 클래식계 중심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보적인 연주자다. 그는 2016 에코 클래식 어워즈 신인상을 비롯해 오르페움 재단상, 베런버그 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베를린 필하모니,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클래식 색소폰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파테예바가 15일 무서운 성장세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금호아트홀 '클래식 나우!' 무대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색소폰은 1840년 경 클라리넷 등 기존 관악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벨기에 출신의 악기 제작자 아돌프 삭스(Adolphe Sax, 1814~1894)가 발명한 악기다. 몸체는 황동으로 제작돼 금관악기처럼 보이지만 나무로 만든 리드를 통해 소리 내는 발성원리에 따라 목관악기로 분류된다. 파테에바는 금관과 목관의 특성을 모두 갖춘 색소폰의 '유연함'을 매력으로 꼽았다. "금관악기처럼 강렬한 소리를 내지만 또 현악기처럼 아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악기에요. 오보에 소리도, 첼로 소리도 낼 수 있는 악기죠."
그는 대뜸 색소폰이 "어려운 운명을 타고난 악기"라고 했다. 뒤늦게 발명된 악기라 정통 클래식계에서 찬밥신세였다. 고향인 파리음악원에서 열린 색소폰 클래스는 수강생이 없어 폐강되기까지 했다. 1990년대 이르러 미국에서 재즈 음악에 자주 연주되며 재조명 받았다. 그런데 정작 유럽에서는 색소폰이 '미국'을 상징하는 악기라며 배척했다. "피아노도 재즈에 많이 연주되는데 피아노는 클래식 악기로 인정받는 반면 색소폰은 재즈 악기로만 취급받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색소폰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고 싶어요."
어린시절 파테예바는 재즈 음악은 일부러 듣지 않았단다. "색소폰을 배운다고 하자 주변사람들이 '그거 재즈 악기 아냐?'라고 묻는데 괜한 반감이 들었거든요." 무엇보다 재즈 색소폰과 클래식 색소폰은 연주 방법이 아예 다르단다. 어린치기에 재즈 색소폰 연주방법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클래식은 작고 딱딱한 리드를 쓰는 반면 재즈 연주자들은 크고 말랑말랑한 리드를 사용해요. 재즈가 숨소리와 침소리를 자유자재로 이용해 열려있고 우렁찬 소리를 낸다면, 클래식은 반대로 이물질 없는 아주 순도 높은 소리를 내야죠."
그러던 그가 3년 전부터 마음을 열었다. "재즈의 매력을 뒤늦게 인정해 즐겨 듣고 있어요. 특히 재즈의 '자유로움'은 클래식 연주자도 배워야 할 점이죠."
파테예바는 현대 색소폰 곡뿐만 아니라 태생적으로 부족한 바로크와 고전시대의 클래식 곡을 직접 편곡해 연주한다. "바흐도 자신의 시대에 색소폰이란 악기가 있었더라면 분명 색소폰 곡을 작곡했을 거예요." 이번 공연에서 특별히 한국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으로는 윌리엄 올브라이트 '알토 색소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꼽았다. "4개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악장은 바로크 풍으로 시작해 4악장은 재즈풍으로 끝나는 다채로운 매력의 곡이에요. 색소폰의 여러 면모를 소개할 수 있는 곡이죠."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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