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하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가장 먼저 북한 주민들의 우는 얼굴이 떠오른다. 김일성과 김정일 장례 기간 중 마치 부모가 죽은 것처럼 절규하는 주민들의 모습. 이는 '북한 정권은 주민을 샅샅이 통제한다'와 '북한 사람들은 맹목적인 충성심은 가지고 있다'는 선입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헤이즐 스미스는 이는 북한 정권의 선전이미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3대 세습 독재국가 북한. 이해할 수 없고 이해 받아서도 안 되는 나라. 하지만 저자는 이런 북한이 '유별난 나라'라는 인식은 북한 정권에게 이득을 줄 뿐이라고 경고한다. 군사적 우월성, 무시무시함, 예측 불가능함 같은 신화야 말로 북한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란 지적이다.
'장마당과 선군정치'는 헤이즐 스미스 런던 SOAS 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가 온갖 신화와 오해로 덧씌워진 북한 사회를 25년간 철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 현지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복원해낸 결과물이다.
이 책은 '시장화'라는 개념으로 북한의 변화를 해석한다.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북한은 옛 소련으로부터 더는 보호받을 수 없었고 경제적 지원도 끊겼다. 국가가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북한 주민들은 자력갱생할 방법을 찾아냈고 이는 '자생적 시장화'로 이어졌다.
암시장처럼 부족한 것을 채우던 비공식 시장은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공간이 됐다. 북한 주민들은 중국이나 남한의 생활 수준을 알게 됐고 지도부의 권위와 정당성은 축소됐다. 1990년대 기근을 경험한 북한 주민들은 더는 국가가 믿을 만한 식량 공급원 역할을 할 것으로 믿지 않게 됐다. 당 관료와 보안 담당자 역시 주민들이 참여하는 시장에 의존하게 된다.
책은 북한의 시장화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현상이며 이를 주도한 것이 엘리트가 아닌 주민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의 편견과 달리 주민들은 세뇌되지도 않았고 우매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문제를 분석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런 관점에서 집단체조에 동원되고 지도자의 죽음에 광적으로 슬퍼하는 로봇 같은 사람이라는 식의 인식 대신 북한 변화의 주역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북한은 지금 이 순간도 '아래로부터'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주장에 대한 근거 제시를 내세운 책은 520여쪽 가운데 주석이 4분의 1이 넘는 147쪽 분량이다. 북한에서 실제 활동한 국제기구들이 발표한 자료와 1998∼2001년 자신이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서 업무를 맡아 2년간 북한에 머무르며 얻은 현장자료를 이용해 북한에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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