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절터에서 통일신라 제작 추정 '국보급' 청동정병 출토
강원도 삼척 도계읍 흥전리 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약 35㎝의 청동정병(靑銅淨甁) 두 점이 나왔습니다.
문화재청은 불교문화재연구소가 흥전리 사지(寺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5월 중순 찾아낸 청동정병을 2일 발굴현장에서 공개했습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형태도 완벽한 이 청동정병은 승방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건물지의 구들 내부에서 발견됐으며, 건물지에서 함께 나온 항아리 조각의 반원형 물결무늬가 '대중 12년'(858)이라고 새겨진 익산 미륵사지 출토 조각의 문양과 비슷해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몸통 어깨 부위의 굴곡이 있고 없는 차이가 있어 두 점의 제작 시기는 조금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정병은 불교에서 정수(淨水)를 담는 물병으로, 승려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필수품이자 중요한 공양구였습니다.
중국 당나라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청동정병은 통일신라시대에 국내에 들어왔고 불교가 융성한 고려시대에 특히 많이 제작됐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제92호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과 국보 제66호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보물 제344호인 '청자 양각갈대기러기문 정병'은 모두 고려시대 작품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청동정병으로는 지난 2009년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다소 훼손된 상태로 발견된 2점과 1930년대 충남 부여 부소산에서 나온 1점이 있습니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흥전리 사지 청동정병에 대해 "청동정병의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로 온전하게 발견된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통일신라시대 문화재로 출토지가 명확하고 보존이 잘 됐다는 점에서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신라 정병은 가장 윗부분인 첨대가 팔각형이고, 문양이 없는 점이 특징"이라면서 "고려시대에는 첨대가 두꺼워지면서 원형으로 변하고, 몸체도 더욱 동그랗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통일신라 정병과 고려 정병은 재질도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려시대 정병은 무늬를 새기기 위해 주석을 많이 사용했지만, 통일신라시대 정병은 구리 함량이 많다는 것입니다. 흥전리 청동정병의 색깔이 짙은 이유도 재질이 순동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청동정병이 출토된 것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에 통일신라의 지배력이 미쳤고, 설악산에 있는 양양 선림원지와 진전사지 등과 함께 선종 사찰이 번창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최 교수는 "인각사에서 나온 청동정병과 고려 정병의 가교 구실을 하는 유물로 중국에서 넘어온 청동정병이 한국화된 사례"라며 "이 전병과 형태가 매우 비슷한 일본 나라(奈良)의 청동정병이 통일신라 유물일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안귀숙 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은 "어깨 부분에 양감이 있고, 표면의 상태로 볼 때 주조기법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한 뒤 "유물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전반적인 형태로 볼 때 인각사 정병보다 앞선 유물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정병이 발견된 흥전리 사지는 산맥과 물길이 나뉘는 매봉산 자락에 있으며, 고려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4년부터 조사가 이뤄지고 있고, 매년 눈길을 끄는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2014년에는 신라시대에 국왕의 고문 역할을 한 승려인 '국통'(國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문 조각이 나왔고, 작년에는 화려한 장식의 금동번(깃발)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조사에서는 청동정병 외에도 금동장식판, 특수 기와인 귀면와(鬼面瓦), 철항아리 등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흥전리 사지 청동정병은 매우 희소한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와 정밀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인 일감 스님은 "절터는 선조의 정신이 담겨 있는 역사적 현장"이라면서 "청동정병으로 인해 전국의 절터를 지속해서 발굴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밝혔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강원도 삼척 도계읍 흥전리 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약 35㎝의 청동정병(靑銅淨甁) 두 점이 나왔습니다.
문화재청은 불교문화재연구소가 흥전리 사지(寺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5월 중순 찾아낸 청동정병을 2일 발굴현장에서 공개했습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형태도 완벽한 이 청동정병은 승방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건물지의 구들 내부에서 발견됐으며, 건물지에서 함께 나온 항아리 조각의 반원형 물결무늬가 '대중 12년'(858)이라고 새겨진 익산 미륵사지 출토 조각의 문양과 비슷해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몸통 어깨 부위의 굴곡이 있고 없는 차이가 있어 두 점의 제작 시기는 조금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정병은 불교에서 정수(淨水)를 담는 물병으로, 승려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필수품이자 중요한 공양구였습니다.
중국 당나라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청동정병은 통일신라시대에 국내에 들어왔고 불교가 융성한 고려시대에 특히 많이 제작됐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제92호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과 국보 제66호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보물 제344호인 '청자 양각갈대기러기문 정병'은 모두 고려시대 작품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청동정병으로는 지난 2009년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다소 훼손된 상태로 발견된 2점과 1930년대 충남 부여 부소산에서 나온 1점이 있습니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흥전리 사지 청동정병에 대해 "청동정병의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로 온전하게 발견된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통일신라시대 문화재로 출토지가 명확하고 보존이 잘 됐다는 점에서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신라 정병은 가장 윗부분인 첨대가 팔각형이고, 문양이 없는 점이 특징"이라면서 "고려시대에는 첨대가 두꺼워지면서 원형으로 변하고, 몸체도 더욱 동그랗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통일신라 정병과 고려 정병은 재질도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려시대 정병은 무늬를 새기기 위해 주석을 많이 사용했지만, 통일신라시대 정병은 구리 함량이 많다는 것입니다. 흥전리 청동정병의 색깔이 짙은 이유도 재질이 순동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청동정병이 출토된 것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에 통일신라의 지배력이 미쳤고, 설악산에 있는 양양 선림원지와 진전사지 등과 함께 선종 사찰이 번창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최 교수는 "인각사에서 나온 청동정병과 고려 정병의 가교 구실을 하는 유물로 중국에서 넘어온 청동정병이 한국화된 사례"라며 "이 전병과 형태가 매우 비슷한 일본 나라(奈良)의 청동정병이 통일신라 유물일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안귀숙 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은 "어깨 부분에 양감이 있고, 표면의 상태로 볼 때 주조기법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한 뒤 "유물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전반적인 형태로 볼 때 인각사 정병보다 앞선 유물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정병이 발견된 흥전리 사지는 산맥과 물길이 나뉘는 매봉산 자락에 있으며, 고려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4년부터 조사가 이뤄지고 있고, 매년 눈길을 끄는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2014년에는 신라시대에 국왕의 고문 역할을 한 승려인 '국통'(國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문 조각이 나왔고, 작년에는 화려한 장식의 금동번(깃발)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조사에서는 청동정병 외에도 금동장식판, 특수 기와인 귀면와(鬼面瓦), 철항아리 등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흥전리 사지 청동정병은 매우 희소한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와 정밀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인 일감 스님은 "절터는 선조의 정신이 담겨 있는 역사적 현장"이라면서 "청동정병으로 인해 전국의 절터를 지속해서 발굴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밝혔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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