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서점가에 문학이 사라졌다.
4월 첫주 예스24 베스트셀러 10위권에서는 문학이 전멸했다. 20위권을 살펴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12위)와 요나스 요나손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20위) 두 권만이 살아남아 체면치레 한 정도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차트에서도 마찬가지로 10위에 턱걸이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11위의 ‘창문 넘어…’이 두 권만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연간 베스트셀러 10위권의 60%를 소설이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문학의 빈 자리를 대신한건 올 상반기 기세가 등등한 인문서·자기계발서다. 아들러 신드롬을 일으키며 2달째 1위를 달리고 있는 ‘미움받을 용기’를 필두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 ‘하버드 새벽 4시 반’, ‘대화의 신’이 1~4위를 점령했다. 앞의 두권은 인문서, 뒤의 두권은 자기계발서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대형 베스트셀러다. ‘미움받을 용기’는 뒤따라 출간된 수십여종의 책의 제목에 ‘용기’가 들어가는 ‘나비 효과’를 만들어냈고, ‘지·대·넓·얕’은 구어체로 풀어 쓰는 가벼운 인문학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몇년간 초강세보이던 스크린셀러가 사라진 것이 문학이 힘을 못쓰는 첫번째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엔 ‘겨울왕국’‘창문 넘어…’‘명량’ 등의 영화가 스크린셀러를 줄줄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올초에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롯해, 정유정 소설 원작 ‘내 인생을 쏴라’, 위화 소설 원작 ‘허삼관’ 등이 흥행에서 힘을 받지 못하면서 스크린셀러의 명목이 끊어졌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전설라 북마스터는 “문학 장르의 부진은 현재 유명작가나 영화화되는 등 이슈가 되는 책이 없는 이유가 크다. 해외문학의 경우 강세였던 북유럽소설 이후로 새로운 지역이나 작가를 발굴하려는 출판사의 움직임도 보이질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엔 밀란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출간되며 문학 시장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다. 문학동네 염현숙 편집국장은 “대형 작가의 신작소식이 뜸한것이 아무래도 문학 시장의 침체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기대작들이 나오는 하반기엔 분위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5월 이후에는 대형작가들이 신작 출간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에서 이슬람 정권이 출범하는 가상 상황을 그려 전유럽에 반이슬람주의 논쟁을 일으킨 미셸 우엘벡의 신작 ‘복종’이 5월말 출간예정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도 신작을 5월 출간한다. 국내 작가로는 박민규 천명관 작가의 장편이 여름 시장을 겨냥하고 있어 분위기의 반전을 노린다.
저자의 명성이나 영화의 도움을 얻지 않고도 히트한 요나스 요나손이나 ‘미 비포 유’의 조조 모예스 같은 신데렐라가 올해엔 나오지않은 것도 문학시장 위축의 이유다. 원미선 21세기북스 문학개발실 실장은 “외부적인 이슈가 아닌 문학 내부에서 독자들의 호응이 큰 작품이 줄어든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큰 작가들이 시장을 이끄는데는 한계가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인작가 발굴에 소홀한 출판계의 잘못도 크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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