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소설 ‘혁명’으로 정도전 열풍을 이끌었던 김탁환(47)이 신작 ‘목격자들’(2권·민음사)로 돌아왔다. 김탁환의 페르소나와 다름없는 이명방이 등장하는 ‘백탑파 시리즈’의 네번째 이야기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조선의 문예부흥기인 정조 치세, 원각사의 백탑 아래 모여 학문과 예술과 경세를 논하던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 젊은 실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뤄왔다. ‘조선의 셜록 홈스와 왓슨’ 콤비라 할만한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명탐정 김진이 새롭게 맞닥뜨린 미스터리는 선박 침몰 사건이다.
의금부 도사들이 신새벽부터 호출된다. 가뜩이나 계속된 흉년으로 민심이 어지러운데, 스무 척의 조운선(漕運船)과 2만 석의 세곡이 수장된 것. 불순한 무리가 민심을 선동해 난을 일으키려 한다는 첩보도 있다. 서해의 진인, 정도령이 바람과 파도를 부려 조운선을 모두 가라앉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명방은 밀양 후조창을 출발한 배가 두척 침몰한 영암 앞바다로 향했다. 이튿날이면 연암 박지원 선생의 무리와 청나라 연경으로 떠나는 사행단에 뽑혀 들떠있던 터였다.
영암에서도 밀양에서도 아무런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알맹이 없는 보고서를 내려는 찰나, 김진이 새로운 단서를 물고온다. 밀양의 조운선은 실제로 세척이 침몰했으며, 열세명이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는 것. 자신의 서자 조택수가 배에서 사라졌음을 알게 된 영의정이 탐정에게 사건의 의뢰를 맡기면서 뭍힐 뻔 했던 침몰 사건의 진실은 수면 위로 고개를 든다. 명탐정 콤비는 세곡이 모이고 조운선을 따라 이동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권과 탐욕이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는지 파헤쳐 간다. 홍대용과 함께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목숨을 건 위험한 함정을 판 끝에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이 팩션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생생한 인물로 되살아나는 정조시대의 실학자를 보는데서 온다. 소설 속에선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탄생하고, 연암의 ‘열하일기’가 쓰여진다. 담헌 홍대용도 천문과 음악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며 활약한다.
김탁환은 작가의 말에서 세월호 사건이 집필의 계기가 되었음을 밝혔다. 그는 “범인을 잡는 데 성공하는 이야기만 쓰고 있기엔 세상이 너무 엄혹했다”면서 “소설에서 잠깐 이겨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고 지고 또 져 눈처럼 바다 밑에 쌓인 기억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했다고 털어놓는다. ‘소설 조선왕조실록’의 9·10권으로 출간된 ‘목격자들’과 함께 전작 ‘방각본 살인사건’(2003), ‘열녀문의 비밀’(2005), ‘열하광인’(2007)도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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