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아울렛’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통 패션 아울렛입니다. 500여 개의 브랜드 이월상품을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것이 ‘마리오 아울렛’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마리오 아울렛’을 오픈한 지 10주년이 넘은 지금, 백화점 형태를 결합시킨 3관을 개관함으로써 내방 고객 9000만 명을 불러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결실의 중심에는 ‘마리오 아울렛’을 만든 홍성열 대표가 있습니다. 처음 편물기 4대와 직원 4명으로 시작한 스웨터 사업을 지금까지 일궈오며 아시아 최대 아울렛으로 거듭나기까지, 그 과정을 홍성열 대표를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눠 봤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Q. 스웨터 사업에 뛰어든 이유?
A.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신의 스웨터를 풀어서 제 스웨터로 다시 짜주시곤 하셨어요. 그 때부터 스웨터라는 옷이 저한테는 마음 속 깊에 박히게 되었죠. 그러다가 첫 사업으로 편물기 무역 회사를 했었고, 편물기가 스웨터와 연관이 깊다보니 스웨터 사업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시작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스웨터 사업을 시작할 당시 처음부터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A. 저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처음부터 목표였습니다. 처음 제가 브랜드를 만든 것이 1980년도였는데 시장 조사를 해보니까 그 때는 대부분 OEM 형식으로 스웨터를 짜서 옷을 완성 시킨 후 대기업에 납품하는 형식이 많더라고요. 제가 직접 시장 조사하고 디자인하고 만든 옷인데 납품을 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제가 만든 옷엔 제 브랜드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마리오’였습니다.
Q. ‘마리오’ 스웨터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던데, 그 비결이 있다면?
A. 차별화였죠. 원사면 원사, 색감이면 색감, 디자인이면 디자인, 모든 면에서 차별화를 했습니다. 직접 동대문 시장에 찾아가 해외에 수출하거나 대기업에 납품하고 남은 질 좋은 원사들을 구입해서 직접 합사를 했습니다. 계절에 맞는 원사, 그리고 보풀이 일어나지 않는 원사를 위해 밤새 합사를 했었죠, 그러다보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마리오’만의 원사가 생겼고 색감도 직접 염료 공부를 해서 스웨터를 염색하다보니 다른 회사와 다를 수밖에 없었고요. 디자인도 제가 패턴이며 미싱 등 다 공부했고 스웨터를 직접 입고 자보기도 했어요. 수축 같은 것을 실험해보려고요. 이런 노력이 있다 보니 저의 스웨터는 늘 인기가 많았죠.
Q. ‘마리오’ 성공 이후, ‘까르뜨니트’를 런칭 했다고? 왜?
A. 좀 더 스웨터를 고급화 시키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까르뜨니트’를 런칭하고 신문이나 TV 등 각종 매체에 광고도 했죠. 백화점에 입점도 시키고요. 백화점에 입점 시키고 난 뒤 일본 백화점 관계자들이 우리나라에 시장 조사를 왔었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까르뜨니트’가 좋다는 말을 듣고는 일본의 쟁쟁한 백화점들이 저를 수소문해서 연락해왔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백화점에도 수출을 하게 된 거죠. 일본에서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그런 질 좋은 원사와 색감, 디자인의 스웨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Q. 큰 홍수 피해도 입었다고 하던데?
A. 공장이 대방동에 있었는데 공장에 물이차고 난리도 아니었죠. 소방차가 와서 공장에 물을 빼내는데 3일이나 걸렸으니까요. 물 빼고 나서 공장에 들어갔는데 일본에 보내줘야 할 스웨터들이 엉망이 되어있었어요. 세탁실에서 빨아서 회복시켜 보려고 했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진짜 ‘망했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일본 백화점 업체들 쪽에서 워낙 저희 제품을 팔아서 많은 고객을 끌어 들였고 질 좋은 스웨터를 만든다는 그런 신뢰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공장 사정을 이해하고 자신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기다려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고마웠죠. 그래서 저도 가격을 조금 낮춘다던지 해서 보상을 하기도 했고요.
Q. 승승장구 하던 중 닥친 IMF, 위기는 어떻게 넘겼나?
A. 백화점들이 하나 둘 씩 부도가 나고 매장들을 다 철수시키라고 하더라고요. 막막했죠. 스웨터를 만들던 다른 경쟁 회사들도 다 힘없이 무너졌고요. 저는 그걸 보면서 생각했죠. 이렇게 다들 힘들어 하며 무너질 때 더 공격적으로 하면 어떨까 하고요. IMF라고 해서 사람들이 옷을 입지 않는 것도 아니고 경쟁사가 없을 때 더 빨리 클 수 있잖아요. 그래서 디자인이며 원사 같은 것을 보강을 해서 더 뛰어다녔죠. 오히려 IMF 때 저희는 회사는 더 덩치가 커졌죠.
Q. ‘아울렛’을 만들자라고 생각한 계기?
A. 80년대, 90년대에는 인터넷이 발달 되어있지 않아서 직접 해외 시장 조사를 다녔었어요. 저도 미국이나 일본 등에 시장 조사를 갔다 왔는데 1년 정도 지난 상품, 재고 상품을 할인 가격에 파는 ‘아울렛’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런 아울렛이 우리나라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패션 사업에 있어서 가장 골칫거리인 재고 상품을 없애 새 상품을 생산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패션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거 같더라고요. 또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사는 소비자들에게도 좋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아울렛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죠.
Q. 마리오 1관 개관 당시 반응은?
A. 처음엔 황폐했던 구로 공단 쪽에 아울렛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패션 업체들이나 사람들에게서 많이 무시를 당했어요. 업체들도 입점을 거부했고요. 저를 믿어준 150개의 브랜드만 입점이 되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마리오 아울렛’을 홍보했죠. 가격이 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는데, 다행히 오픈 첫 날부터 고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저희도 놀랄 정도였죠. 결국 가격이 싸다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최대의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렇게 점점 고객들이 늘면서 그들이 원하는 브랜드, 원하는 서비스가 늘어나다보니 마리오 2관도 생겨나게 된 거고요.
Q. 3관이 생기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는데?
A. 고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관 개관이 간절했는데 우리나라의 산집법 때문에 이를 빨리 진행할 수가 없었죠.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만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 산집법인데 이는 굉장히 구시대적인 법이었어요. 우리나라 패션 사업을 퇴화시키는 것이었죠. 그런데 마침내 몇 년 전 법이 개정이 되었고 2012년에 3관이 개관 된 겁니다. 3관은 백화점 형태를 결합해서 좀 더 고급스럽고 고객들이 쉴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만들어서 편의를 제공 할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먼저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드리기 위해 더 많은 브랜드를 입점 시키고 ‘아울렛은 백화점 보다 못하다.’라는 인식을 고치기 위해 인력이나 매장 인테리어들을 보강해 나가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지금 ‘마리오 아울렛’이 아시아 최대의 패션 아울렛이 된 만큼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적인 패션 명소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또 우리나라 패션 사업이 발전한 만큼 고급스러운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 나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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