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벨 에포크’ 시대 파리 밤 문화를 특유의 매혹적이며 도발적인 필체로 표현한 석판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화가, 판화가, 삽화가로 활동한 그는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고 당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에서 새로운 예술의 다양성을 흡수, 독창적인 조형성을 개척하였다.
화가였던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1864년 11월 24일~1901년 9월 9일)은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는 석판화 광고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또한 혁신적인 서체 배치로 현대 그래픽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며, 전위적인 구성과 실험적인 필치로 현대 회화의 도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한 예술가로 오늘날 평가받고 있다.
신체장애를 가졌던 로트렉은 귀족 문화에 조화될 수 없었고, 대신 자신만의 외로운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 그는 가문의 영향력으로 당대 저명한 화가들에게 미술을 배웠지만 1880년대 중반 스승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몽마르트에 정착하여 파리의 보헤미안들을 자유롭게 그리기 시작했다. 유흥문화가 성행한 그곳에서 로트렉이 이끌린 대상은 무희, 연예인, 카바레 인물 등 몽마르트의 유명 인사들. 그는 수많은 스타들의 개성을 간결하게 표현한 독특한 화풍으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직업 여성의 평범한 일상에 애착을 가지며 인간에 대한 비범한 통찰력을 작품에 담아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La Troupe de Mademoiselle Eglantine 에글랑틴 무용단’, 1896, © Ernst Barlach Museumsgesellschaft Hamburg and Wolfgang Krohn Collection
로트렉에게 몽마르트는 예술적 재능을 만개할 수 있는 환경이면서, 동시에 매춘과 음주에 취약하게 만든 곳이다. 그는 1891년부터 190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무려 31점의 포스터를 제작하며 창작의 열정을 보여주었지만 알코올 중독과 잦은 매춘으로 1901년 36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전시는 로트렉의 예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본다. 신체적 장애를 개의치 않고 사람들과 교류를 즐긴 호방함, 어떠한 유파에도 속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인 실험정신, 특히 화려함과 저급함 이면의 인간미를 관찰했던 그의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동시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황금기를 이끈 알폰스 무하, 쥘 세레,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을 포함한 13명의 작품을 망라하는 159점의 석판화 명작도 선보인다.
Info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기간: ~2025년 3월 3일
시간: 월~일요일 10:00~19:40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기간: ~2025년 3월 3일
시간: 월~일요일 10:00~19:40
[글 김은정(칼럼니스트) 사진 마이아트뮤지엄, ©Ernst Barlach Museumsgesellschaft Hamburg and Wolfgang Krohn Collection]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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