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가 소개한 동물보호법 위반 사례와 판결입니다.
지난해 길고양이 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인증 사진과 영상을 공유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던 '고어전문방' 사건, 기억하는 분들 많을 텐데요. 법원은 고어전문방을 운영하면서 동물들을 학대하고 살해한 피의자에게 벌금 100만원에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동물단체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제주도에서 동물학대 사건이 잇따르면서 '유기동물 없는 제주네트워크'는 제주도의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학대범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동물학대 처벌 수위가 낮다는 동물보호단체의 지적은 계속돼 왔습니다. 일반 국민 가운데서도 동물학대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 제안을 받았는데, 우수 제안 5개 중 '동물학대 처벌법을 강화해주세요'가 가장 많은 선호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실제로 낮은지 확인해 봤습니다.
판결문 200개 분석…대부분 벌금형에 실형 단 1건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행위를 한 사람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이었던 것이 지난해 2월부터 강화됐습니다.
법에 명시된 처벌 수위를 놓고 보면 독일(3년 이하 징역, 3천300만원 이하 벌금)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외에도 벌금형을 부과하는 국가가 많이 있는데, 여기서 또 다른 변수를 고려해 봐야 합니다. 각 나라마다 물가 수준이 다를테니 벌금액에 대해서도 각 나라 국민이 체감하는 형량 수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동물법이야기’의 저자인 김동훈 변호사는 각국의 물가와 환율 등을 고려해 우리나라 벌금형 상한액이 외국과 비교하면 어떤 수준인지를 분석한 '동물학대형량비교지수'를 고안하기도 했는데요, 김 변호사가 개발한 '동물학대형량비교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벌금액을 가볍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012년 기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동물학대 행위에 대한 벌금형량은 선진국의 60%까지 도달했다고 김 변호사는 책에서 밝혔습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동물학대행위에 대한 벌금형은 일본, 스위스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2012년 당시 우리나라 벌금형의 상한액이 1천만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는 상한액이 3천만 원이 됐으니 다른 선진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실제 처벌 수위'입니다. 실제로 높은 수준의 벌금이 매겨지는지, 징역형 처벌을 받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2013년부터 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동물학대범 관련 판결문 전수 분석 자료
MBN 사실확인팀은 2013년 이후 최근까지 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동물학대범 판결문을 모두 분석했습니다.
동물보호법 위반으로만 기소된 사건 중 형이 확정된 사례는 모두 194건이었고, 201명이 기소됐습니다. 이중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모두 165명으로 82%를 차지했습니다. 벌금액 평균은 142만 6천 원이었습니다. 실제로 처벌하지 않는 선고유예는 13명이었고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단 한 명으로 징역 6개월이었습니다.
우리나라 1인 가구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이 299만원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140만 원 수준인 벌금을 무겁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해외는 얼굴과 주소까지 공개…동물 소유권 박탈하기도
테네시주 홈페이지 캡처
해외에서는 동물 학대범을 어떻게 처벌하는지 볼까요?
미국의 테네시주는 다른 주와 달리 동물학대범 등록법을 통해 동물학대 범죄자의 이름과 사진 등을 웹사이트를 통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이트에는 범죄자의 사진과 이름, 주소, 판결 날짜 등이 나와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성 범죄자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는 셈입니다.
일리노이주는 인도적 동물 돌봄법을 통해 동물을 구타하거나 잔인하게 대하는 행위, 굶주리거나 과로하게 하는 등의 학대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A급 경범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2회 이상 위반할 경우 4급 중범죄로 처벌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도입한 영국엔 동물 소유권 영구 박탈 조항이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영국의 동물복지법 제33조엔 동물복지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동물 소유권을 박탈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이 영국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한 경우가 있는데, 이때도 처벌 수위는 달랐습니다.
지난 2019년 충남 아산의 한 고등학교 직원이 쇠파이프를 이용해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학대범은 법원으로부터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영국에서도 2019년 2살짜리 강아지 ‘스타’가 진공청소기 부품인 금속 막대로 학대당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법원은 학대범에게 18주간의 징역형과 함께 동물 영구 소유 금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사건이지만 우리나라와 영국의 처벌은 상당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나, 다른 나라와 처벌 수위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동물학대에 관대하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인 것으로 판명됩니다.
대검, 해외 처벌 사례 분석 중…'동물, 물건 아니다' 개정안 국회 계류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노력도 물론 있습니다.
대검찰청은 건국대학교 글로컬산학협력단을 연구용역 대상자로 선정하고,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연구에 나섰는데요. 대검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가 시행 중인 동물학대 범죄 처벌 사례 및 판례, 통계 등 실증 자료를 분석해 동물학대 등의 구성요건적 행위를 분석하고 이에 맞는 양형기준을 수립한다는 계획입니다.
또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 인정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지난해 9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뒤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법무부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화하면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나 동물피해에 대한 배상의 수위가 높아지고, 생명존중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제안들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5%인 312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동물을 가족으로 대하는 인구가 그 정도 수치라는 거겠죠. 동물들의 권리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도 그에 맞는 수준으로 올라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민 기자 saysay3j@naver.com]
취재지원 : 문승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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