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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키즈∙어른이∙신중년’...신(新)도시인의 탄생
입력 2024-03-2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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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어른이∙신중년의 소비 알고리즘
‘신중년을 잡으면 ‘어른이 잡히고
‘어른이를 잡으면 ‘어린이가 잡힌다

꽤 오랫동안 ‘MZ 세대론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핵심으로 꼽혀 왔다. X세대와 밀레니얼은 실제 소비를 이끌어가는 핵심 세대가 됐다. Z세대는 청년층으로 분류되며, 이전 세대의 바통을 이어받게 될 잠재적 큰 손이다. 모든 브랜드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이 두 개 소비자군에 집중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만의 리그로 마케팅 전략이 펼쳐지면 안 될 것처럼 보인다.
저출산의 역설, 가족 지갑 여는 ‘키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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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저출산 현상 때문에 새로운 소비자군이 탄생한다. 바로 스스로의 경제력은 전무하지만,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아기를 포함한 ‘어린이다. 전문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들은 X, M, Z 등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 알파 세대다. 알파 세대는 주체로서의 소비 효율은 현격히 떨어진다.
필자의 만 4세 아들만 봐도 그렇다. 화폐에 대한 개념조차 탑재하지 못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물건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욕망이 충족되면 배시시 웃지만, 결핍이 발생하는 순간 울거나, 투덜댄다. 여기에서 어린이 소비자군의 유효성이 표출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저출산 시대의 역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출산율 저조는 저연령 세대의 결핍을 생성하고, 그 수가 줄어든 만큼 그들은 각 집안의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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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퇴근길마다 아이는 내게 묻는다. 자신을 위해 사온 게 없냐고. 이건 우리 부부가 버릇을 잘못 들인 탓도 클 거다. 하지만 그의 친구 또래들을 보면 대부분이 쉴 새 없이 뭔가를 원하고, 또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년 백화점 매출 중 럭셔리 브랜드의 키즈 의류 부문 매출은 크게 증가했다. 금세 커버리는 아이에게 누가 이런 비싼 옷을 사주겠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잘 팔린다.
여기에 더해 이들보다 조금 더 성장한 알파 세대들은 용돈을 받고, 그 자본을 주체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는 다이소다. 용돈 생활자들에게 거기만큼 가성비가 좋은 곳도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필자의 조카들은 참새가 방앗간 거르지 않듯 시종일관 다이소에 들른다. 주로 구입하는 건 일명 ‘다꾸라 알려진 다이어리 꾸미기용 스티커, 또는 ‘폴꾸로 알려진 폴라로이드 사진 꾸미기용 재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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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애정하는 공간은 또 있다. 편의점이다. 그들은 학원 종료 후 그곳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용돈 생활자이기 때문에 역시나 큰 소비는 없다. 유행하는 간식 하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세대는 이제 유통 및 제조 부문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새로운 도시인의 한 범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더욱이 이들을 타깃으로, 부모(X와 밀레니얼) 세대의 지갑을 열게 하는 교육, 금융 부문에서도 이들을 위한 전략은 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비자 범주로 자리매김한 ‘어른이
현대적인 느낌으로 복원된 현대정공의 갤로퍼.수작업을 거쳐 모헤닉G 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사진 모헤닉 게라지스, 매경DB).
어린이로 규정되는 알파세대 이후의 또 다른 소비자군은 바로 ‘어른이라 별칭 지어진 기존 소비자들이다. 용돈 생활자가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스스로의 소비를 실천하는 단계. 미디어는 ‘어른이를 두고 성인이 되었어도 어린이가 좋아할 법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제과 회사는 어린 시절 추억이 듬뿍 담긴 새우깡에 일종의 마른 안주 맛을 첨가한 ‘먹태깡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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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고 해서 예쁜 인형이나 피규어를 보고 좋아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어느 날, 아내의 가방에 복슬복슬한 검은 털을 가진 인형 키링이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다 큰 어른이 무슨 인형을 달고 다니냐!”며 핀잔을 주었다. 돌아오는 답은 트렌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군”이었다. 검색해보니 판매되는 시중의 키링 아이템이 수없이 쏟아졌다. 심지어 웃돈 얹어 리셀되는 제품들도 있었다. 포켓몬, 블핑이 등.
쌍둥이 디자이너 딘 과 댄(사진 디스퀘어드2 홈페이지 갈무리)
이렇게 어른들은 피터팬이 되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을 소비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른이는 레트로와 뉴트로 사이에서 실제적으로 큰 소비를 행한다. 바이닐 레코드 한 장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지만 어른이들은 주저 없이 구매한다. 1990년대 생산된 현대 자동차의 갤로퍼가 아무리 똥차가 되었다 해도, 그걸 새롭게 복원하면 엄청 비싸진다. 매물이 없어서 못 팔 정도다. 패션에서도 Y2K 브랜드로 인식되던, 그러나 지금은 굉장히 고가로 거래되는 디젤과 디스퀘어드2의 새로운 부상도 어른이 아이템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출산율 저조는 낮은 연령 세대의 결핍을 생성하고, 그 수가 줄어든 만큼 ‘키즈족은 각 집안의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존재가 된다. 패션에서는 Y2K 브랜드로 인식되던, 그러나 지금은 굉장히 고가로 거래되는 디젤과 디스퀘어드2의 새로운 부상은 ‘어른이 아이템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어른이 고객을 위한 신한카드 ‘신한 픽 E·I 체크 포켓몬스터 에디션(사진 매경DB)
UN 만 65세까지 청년”…신중년의 어택
UN은 ‘만 18세부터 만 65세까지를 청년이라고 규정한다. 굉장히 광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느 면에서 이게 옳다는 생각도 든다. 키오스크 앞에 서서, 지금 한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예를 들어 파이브가이즈 등의) 햄버거와 쉐이크를 주문하는 어르신을 보고 있노라면 청년이라는 기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신중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내가 살던 경상도의 소도시에서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었다. 적어도 40년 전에는 그랬다는 얘기다. 주변을 둘러보라. 허리나 등이 꼿꼿한 어르신들이 더 많다. 그만큼 노령층의 건강상태가 양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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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100세 시대라고까지 하지 않던가! 신체가 건강하다는 건 스스로 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 주변의 많은 어르신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아니 은퇴했다 하더라도 노후 대책을 해둔 어르신들은 삶을 즐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5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라고 한다. 그만큼 ‘워킹 시니어가 증가했다. 아마 나 역시 그래야 할 것만 같다. 현재의 저출산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지만, 그나마 출산을 한 양육자의 출산 나이도 그만큼 올라갔다. 이런 상황 때문에라도 나는 지금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적 성인이 될, 내 나이 60대 중반 이후까지 경제활동을 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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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시니어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의 소비 역시 무시하지 못하는 큰 영역이 되었다. 현재 나의 부모 세대는 디지털에 난색을 표하지만, 점차 시니어 그룹에 편입하는 이들은 그것이 낯설지 않다. 은퇴 직전까지도 사용했던 테크놀로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트로트가 완전히 또 다른 산업군으로 자리하게 된 것 역시 이들의 활약이 컸다. 임영웅이 콘서트를 하면 예매 전쟁으로 난리통이 난다. 자녀들이 그 전쟁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지만 스스로 그 전쟁을 치르는 노령층도 많아졌다. 트로트 역시 K-팝 아이돌 팬덤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다. 그 팬덤 속에서 신중년들은 Z 및 알파 세대가 쓰는 온라인, 팬덤 용어를 스스럼 없이 사용한다.
신중년들은 패션 산업에도 관심이 많다. 콰이어트 럭셔리, 올드 머니 룩 등의 시장을 견인하는 소비자군에 이들 역시 빠지지 않는다. 로로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 에르메스 등의 제품들을 소비하는 VIP 그룹에 60세 이상의 노령층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신중년을 잡으면 ‘어른이가, ‘어른이를 잡으면 ‘어린이가 잡힌다
‘어른이를 잡으면 ‘어린이도 잡힌다. ‘신중년을 잡으면 어른이도 함께 따라 유입될 확률이 크다. 반대로 어린이를 잘 구슬려도 어른세대가 껴든다. 아니 껴들어야만 한다. 왜냐면 내 아이는 세상에서 하나뿐이니까. 포켓몬 띠부씰만 봐도 그렇다. 초등학생들의 광풍 아이템이었지만, 어른이들이 가세했다.

소녀적 취향의 키링은 어린이를 유혹했고, 심지어 그것에 매혹된 어른이들이 뛰어들었다. 기존 명품 패션 시장에 Z세대까지 유입이 되니, 조금 더 럭셔리해지고 싶고, 좀 더 차별화되고 싶은 위 세대 소비자들은 콰이어트 럭셔리를 표방하는 브랜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이 시장이 기존의 시니어층과 (이들보다는 조금 더 젊은) 어른이 범주 소비자까지 가세되며 더욱 더 확장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전략을 준비할 때, 이 같은 세 가지 소비자군의 순환적 알고리즘까지 고려해야만 조금 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및 일러스트 픽사베이, 게티이미지뱅크,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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