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over Story] ‘피터팬’ 말고 ‘네버랜드’가 중요한 이유
입력 2023-03-27 11:22  | 수정 2023-03-27 11:57
사진 픽사베이
무장해제 상태에서 즐기는 심리적 불특정 공간
2023년에는 ‘네버랜드 신드롬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신드롬 속에는 아이템, 장르, 공간, 스토리 등의 모든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요소를 응축한 어떤 인사이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길어진 청년기, 늘어난 피터팬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는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의 트로피까지 싹쓸이한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 차 만난 적이 있다. 그는 1969년생이다. 아직 만 나이 적용이 되기 전이니 현재 그는 (한국 나이로) 55세다. 봉 감독을 약 2년 전에 만났으니 그때는 53세 때였다. 농담 삼아 불과 몇 년 후면 환갑이시네요”라는 말을 던졌다. 그가 질색했다. 주영 씨는 (2015년에) UN에서 규정한 청년 기준을 아직 보지 못했나 봐. 이제는 65세까지가 청년이에요”라며 웃었다. 평균 수명이 늘어가며 세상이 청년을 규정짓는 잣대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나는 올해로 49세다. 그래도 (만 나이를 표준으로 사용하게 될) 올 6월이면 48세가 된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따위 숫자가 무슨 상관이람. 내가 청춘처럼 젊게 살면 된 거지라고. 이 관념을 자양분 삼아 과거에 ‘키덜트라는 용어가 트렌드로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키드와 ‘어덜트의 합성어다. 이건 아이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성인이 (동심 어린) 아이 물건에 호감을 가지는 현상학적 용어였다. 그래서 마케팅 분야에서는 ‘키덜트를 위한 OOO이라는 전략을 종종 실행하며 소비자에게 다가가곤 했다. 여전히 이 용어는 유효하다. 이제 청년의 범위는 확대되었고, 성인들이 조금이라도 젊게 살려는 욕망 역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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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고전으로 손꼽히는, 제임스 M. 베리의 동화 『피터팬』은 많은 점을 시사하는 텍스트로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화의 서사가 전달하는 건 ‘결코 성인이 되고 싶지 않은, 그래서 동심 가득한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근본적 욕망과 관련된 것이다. 피터팬과 팅커벨이 웬디를 비롯한 아이들을 데려가는 곳은 ‘네버랜드로 상징화된다. 세상 누구나 알고 있듯 웬디는 다시 현실로 귀환하고, 피터팬은 여전히 네버랜드로 또 다른 아이들을 초대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발생한다. 피터팬은 영원히 아이로 남아 있지만, 웬디는 모든 세상 사람들처럼 나이를 먹고, 세상을 경험하며 점차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웬디의 마음 속에서는 억압되지 않는 하나의 욕망이 지속적으로 분출될 것이다. 바로 피터팬과 네버랜드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애틋함. 여기에서 2023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주요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네버랜드 신드롬이 도출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네버랜드 신드롬

그런데 왜 기존부터 존재하던 ‘피터팬 신드롬이 호명되지 않고, 전문가들은 ‘네버랜드 신드롬이라 명명할까? 언어적 유희라 받아들여도 되겠지만, 나는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단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심리 기제를 근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냥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아이로 살고 싶다는 자세는 사회 시스템 내에서 그리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질 게 뻔하다. 하지만 ‘네버랜드는 장소이자 공간이다. 심리학적 반발 기제로서의 피터팬보다는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여진다. 사회가 구축해 둔 규범과 절차를 받아들이며 자라난 성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뛰놀 수 있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장소가 바로 네버랜드라는 상징이기에 그렇다. 여기에는 올해 또 다른 트렌드로 활성화되고 있는 ‘플레이그라운드라는 개념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네버랜드는 놀이 공원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아이가 아닌 현실적 성인이 아이와 같은 심리적 무장 해제 상태에서 즐길 수 있는 많은 불특정 공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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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신드롬이라고 하면 사회적 현상이면서 병리학적 증상으로 통용될 때가 많다. 일단 네버랜드 신드롬은 전자 쪽으로 무게를 더 기울이게 한다. 최근 극장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 떠들썩했다. 만화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바로 그것. 올해 시작과 함께 스크린에 걸린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 2개월 차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흥행 중이다. 당신이 만일 X세대에서 M세대 정도에 걸쳐진 연배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만화책 『슬램덩크』의 극장판이다. X세대인 나는 청소년 시절, 『슬램덩크』에 푹 빠져 살았다. 신간이 나올 때면 서점으로 달려가 만화책을 사기도 했고, 용돈이 부족해 구입을 못할 때면 친구들과 돌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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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첫 연재를 시작한 『슬램덩크』는 한국의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친 텍스트다. 패션 분야에선 농구화와 (힙합과도 연계되어) 농구 저지 티셔츠 등을 유행시켰고, 1994년 인기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으니 말이다. 그때 그 만화책이 (중간에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영화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의 X세대는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연령대에 있지만 열광했다. Z세대로 규정되는 현재의 청년층은 나에게 레트로인 『슬램덩크』를 뉴트로로 받아들이며 극장 좌석을 가득 메웠다. 다시 만화책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이 만화 영화의 흥행 속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네버랜드 신드롬이 포진되어 있다. X세대에게는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욕망을, Z세대에게는 전혀 몰랐던 텍스트를 통해 현재에 머물러 청춘을 더 즐기고픈 욕망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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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신드롬의 유형

그렇다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네버랜드 신드롬은 어떤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도서 『트렌드 코리아 2023』에 따르면 어린 시절로의 회귀, 나이 듦의 거부, 아이처럼 놀기를 그 유형으로 나눈다.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유형은 명확하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친숙한 포켓몬 캐릭터를 내세운 ‘포켓몬 빵을 떠올려보자. 편의점, 슈퍼마켓, 대형마트 앞에는 빵 속에 들어 있는 띠부씰을 위한 대기와 오픈런이 연일 벌어졌다. 아이들을 위한 상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에 열광하는 어른들도 많았다. 『슬램덩크』의 폭발적 흥행도 이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처럼 만화책으로 그 텍스트를 접한 이들이 다시금 청년 시절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나이 듦에 대한 거부는 사회가 관습화시킨 나잇값에 대한 반발이다. 의례적으로 마흔 줄에 접어들면 점잖게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 거래가 형성되어 있다. 물론 지켜야 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지키지 않아도 될 때에는 그 경계를 무너트릴 필요도 있다. 동시에 이에는 관리라는 개념도 도입된다. 예를 들어 젊게 보이려는 노력의 일환 중 하나가 피부 관리 및 시술이다. 과거에는 여성에게 특정된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젠더리스 시대에 접어들며 스스로를 위해 관리를 받는 남성들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젊게 놀기 위해서 젊어 보여야 한다는 것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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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어른들의 놀이를 아이처럼 즐기려는 형태다. 골프를 생각해보라. 골프는 굉장히 엄격한 클래식 스포츠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의 골프는 그렇지 않다. 위스키 등의 주류도 마찬가지다. 엄숙한 바에서 정장과 시거를 연상케 하는 위스키는 이제 청량음료와 함께 섞어 즐기는 가벼운 술로도 전환되고 있다. 하이볼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처럼 네버랜드 신드롬의 세 번째 유형은 격식을 차리고 동시에 어렵게 느껴졌던 행위를 ‘일종의 놀이 개념으로 받아들이려는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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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제시한 세 가지 유형에 ‘네버랜드라는 장소 및 공간의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서는 편의점이나 마트라는 공간이 필수적이다. 그 앞에 밤새워 줄을 선다거나, 문을 열자 마자 뛰어 들어가 원하는 목표물을 찾아낸다는 것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소비자가 많지 않던가. 『슬램덩크』를 만나기 위해서는 극장엘 가야 한다. 이 역시 공간의 필요성을 증폭시킨다. 단지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굿즈를 구입할 숍도 필요하다. 젊어지기 위해 혹은 젊어 보이기 위해서도 공간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공간을 위해 많은 기업과 브랜드들은 ‘팝업 스토어를 연다. 그리고 그 속에 네버랜드 신드롬을 유발시키고, 증폭할 수 있는 갖가지 장치를 설치한다. 게임기가 설치된 경우도 있고, SNS 콘텐츠를 위한 포토존을 마련하기도 하며, 심지어 어린 시절의 불량 식품을 간식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팝업 스토어 및 공간들은 네버랜드 신드롬을 가진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일종의 전략적 실천인 셈이다.

현실적 카르페 디엠의 필요성

네버랜드 신드롬을 그러나 이 같은 몇 개의 사례로만 한정 짓기에는 영역이 너무 크다. 나 같은 경우는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사랑하고 수집한다. 필름 가격이 너무 인상된 게 흠이라면 흠인데, 그럼에도 모바일 카메라보다는 필름 카메라의 (고화질을 부르짖는 현대적 관점과 동떨어진) 흐릿한 이미지가 더 좋기 때문이다. ‘Y2K 트렌드와 더불어 다시 구매가 활성화된 포터블 디지털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 붐도 네버랜드 신드롬과 일정 부분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CD 판매율을 넘어선 바이닐 레코드 소비도 마찬가지다. X세대는 과거에 자신이 즐기던 것들을 다시금 즐길 수 있어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환상을 가지게 된다. Z세대는 디지털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아날로그의 정취가 너무도 새로운 놀이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그때로 돌아가고, 이 시절을 놓치기 싫은 세대 모두에게 네버랜드 신드롬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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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신드롬을 두고 무작정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앞서 신드롬의 사전적 의미를 논할 때 병리학적 증상으로서의 신드롬도 언급한 바 있다. 왜냐하면 웬디처럼 사회적 수순을 밟으며 성인이 된 이들도 있겠지만 미성숙한 성인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에 그렇다. 어린이는 순수하다. 하지만 그 순수함이 곧 자기만의 세계로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역기능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행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만 한다. 하지만 미성숙은 종종 책임을 상실하곤 한다.

지속 가능한 네버랜드를 찾아서

다시 동화 『피터팬』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네버랜드에서 후크 선장과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피터팬이 마냥 좋게만 보여지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니다. 나의 세 살배기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피터팬이 과연 좋은 캐릭터라고 알려줘야 할까?라는 의문 말이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사고 싶어하고, 그걸로 즐기기를 원한다. 이게 트렌드라고 한다면 내 나이는 잊고 한번쯤 배우고 도전해 보고픈 욕망이 생겨난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고,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다. 이를 분명하게 각인하고 네버랜드라는 공간에 펼쳐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만 한다.

그래서 해가 지면 장난감을 두고 집에 들어가야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동시에 제 아무리 갖고 싶은 장난감이 생겼다 할지라도 가족의 가계를 생각해야 하고, 미래를 걱정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이 알려줬던 ‘현재를 즐겨라(카르페 디엠)를 실천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분명 현실 감각을 가지고 즐겨야 함이 필수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세대 속에 응집되어 있는 ‘네버랜드 신드롬은 시대의 척도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이에 맞춘 전략적 마케팅도 필요해졌다. 세대를 막론하고 인생이 재미있고, 살아감이 흥미롭기를 원하는 데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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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점차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 65세까지를 청년이라 부르고, 그 이후를 중장년으로 칭한다. 나만 하더라도 이와 같은 구분 속에서 거의 20년에 가까운 청년기가 남아 있다. 이제 갓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가 아빠를 거추장스럽지 않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젊음을 유지하고, 체력을 보전해야만 한다. 동시에 트렌드를 좇으며 아이들의 문화 속에서 함께 즐길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내가 즐기는 동심 가득한 세상 속에 그가 찾아와도 된다. 아빠라는 (어른이 된) 피터팬과 함께 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말이다. 내가 즐기는 아날로그 문화를 그가 함께 즐긴다면, 내가 집이라는 공간 속에 만들어둔 작은 장소가 우리 가족에게는 일종의 네버랜드로 기능할 테니 말이다.

이 네버랜드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잘 찾아낸다면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 도출될 수도, 동시에 수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실천이 될 수 있음에도 틀림없다. 그렇게 잘 찾은 한 요소는 모두의 네버랜드가 되어 폭발적 호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과연 당신의 네버랜드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NEW]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2호(23.3.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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