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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만큼 참은 홍명보...‘응답하라 벤투’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 #14]
입력 2022-06-14 08:28  | 수정 2022-09-12 09:05
프로축구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과 지난 2일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에서 만났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대표팀의 주장으로서 20주년을 돌아보는 자리에서였다. 20년 전 태극전사를 향한 팬들의 함성이 메아리쳤던 서울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서울시청 옥상에서였다.

홍 감독은 바로 건너편 플라자호텔에서 히딩크 감독 등 2002 태극전사과 오찬을 하고 나서 서울광장을 가로질러 약속 장소로 왔다. 한데, 홍 감독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 2002 멤버들과 모처럼 함께 뜻깊은 자리를 하고, K리그 선두도 달리고 있는데, 왜 그랬던 걸까.

녹화를 마치고 당시 오찬 참석자들을 취재해보니, 홍 감독은 오찬 석상에서 동석한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에게 큰 마음을 먹고 무언가 건의(혹은 제안)를 했는데, 시큰둥한 답변을 들었다. 오는 7월 일본에서 열릴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관련 축구 대표팀 국내 선수 차출 이슈였다. 자신이 이끄는 울산 등 일부 구단 선수들이 대표팀에 대거 차출될 것을 우려해 정 회장에게 의견을 냈는데, 거절당한 것이었다. 과거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정 회장을 ‘모셨던 까닭에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텐데, 냉담한 반응에 상실감이 컸던 것 같다.

동아시안컵이 왜?

K리그는 지금 다음 달 동아시안컵이 다가올수록 예민하다. 동아시안컵이 2019년처럼 시즌을 모두 마친 12월에 열린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올해는 시즌 중간인 7월에 열리면서 국가대표 차출에 응해야 하는 일부 대상 구단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동아시안컵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가 아니어서 아시아 리그 소속의 사실상 국내파 위주로 선발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국가대표가 유독 많은 선두 울산과 3위 전북 등은 ‘차출 폭탄을 맞는 게 불가피하다. 현재 A매치 4연전 중인 대표팀에 울산 소속 5명, 전북 6명, 김천 4명 등 3구단 선수가 15명이나 포함되어 있는데, 현 상황이라면 동아시안컵에도 최소한 이들 인원수대로 대표팀에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 이 3팀 선수만으로 대표팀을 구성할 수도 있을 정도다. 지난 1월과 3월 월드컵 최종예선 때도 이들 팀들에선 4~6명씩 차출된 바 있다.

더 중요한 건, 동아시안컵이 열리는 7월 19~27일 기간에 K리그가 열린다는 점이다. 전술한대로 FIFA A매치 데이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대회 7일 전 대표팀이 소집되면, 해당 구단들은 소속 국가대표 선수 없이 22라운드(17일), 23라운드(22~24일), 24라운드(26~27일) 등 3개 라운드를 치러야 한다. 울산과 전북은 대회 폐막 이틀 뒤인 29일(25라운드) 경기도 예정돼 있어 차출된 국가대표 선수 활용이 어렵다고 봐야하므로 사실상 4경기에 소속 국가대표 선수 없이 리그 일정을 치러야 한다.

빡빡한 일정과 무더위가 시작되는 기간, 주축 선수 없이 4경기를 치른다? 울산이 막강 전력으로 현재 2위 제주에 ‘승점 10 앞서 있지만, 그 간격이 좁혀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울산에 ‘승점 11 뒤진 채 6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전북은 추격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9위에 처진 김천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공정이 화두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불공정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반대로 차출과 크게 관련이 없어 상대적으로 이득이 점쳐지는 일부 구단은 ‘표정 관리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누군가의 위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인 모양이다.

홍명보는 왜?

홍 감독은 잘 알려졌듯이 2020년 12월까지 3년 간 축구협회 전무이사를 지냈다. 전무 퇴임 후 곧장 지난해부터 울산 지휘봉을 잡았다. 2년 연속 준우승한 울산을 맡아 쌓인 우승 한을 풀고자 했다.

하지만, 대표팀 대거 차출 이슈로 지난해 첫 시즌 내내 비슷한 문제로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 일관된 정상 전력을 가동하는데 어려워하더니 결국 선두를 달리다 시즌 막판 2위로 미끄러져 라이벌 전북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올림픽과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경험해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전무를 맡아 이와 관련한 조율 업무도 했었기에 아쉬워도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식의 태세 전환을 하지 않는 등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2년째 같은 일이 반복되니 조정 역할을 해야 하는 협회가 ‘제 기능을 해주길, 벤투가 쌍방향으로 소통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 ‘외부 변수로 인해 올해 또다시 우승을 놓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협회장에게 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홍 감독이 벤투도 아닌 정 회장에게 ‘차출 안배 건의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측면에서 고려할 때 결국 협회장이 결단을 내려줘야 대표팀과 관계된 모든 인원이 동아시안컵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결론에서인 것 같다. 협회장이 사전에 ‘결과주의에서 책임을 덜어준다면 동아시안컵과 관련한 모든 이(코칭 스태프 및 협회 임직원 등)가 한결 여유를 갖고 준비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협회장이 대표팀-K리그 간 중재 메시지를 내면,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벤투 감독이 팀별 차출 인원 안배 혹은 차출 연령 조정 등을 할 수 있는 심리적 여지가 생길 거라 본 것이다.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벤투는 ‘계약서대로 선수를 선발한다는 입장이다. ‘계약서라는 건 본인이 선발하고 싶은 선수를 자유의지대로 뽑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 회장이 일단 ‘노(No)를 선언하면서 벤투의 선발 자유의지는 막을 길이 없다.

무슨 건의였길래?

중국과 일본 무대에서 활약했던 홍 감독은 본인 네트워크를 통해 각국 축구협회 국가대표 차출 상황을 체크하고 나서 2가지 결론에 도달하고는 정 회장에게 몇 가지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약하면, 동아시안컵에 1)구단 별 최대 3명 차출, 혹은 2)23세 이하 선수들 차출이다. 1)의 경우, ‘공정한 경기를 진행하기 위한 것이다. K리그와 대표팀의 상생, 협치의 의미가 있다.

2)의 경우, 일본과 중국 축구협회가 23세 이하 선수들로 동아시안컵에 참가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한국 역시 전력을 맞추자는 뜻이 담겼다.

협회장과 벤투는 왜?

축구협회 내외부에서 나오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정 회장과 벤투 감독은 동아시안컵에서 우승(4연패 도전)은 물론이고, 특히 일본에 대한 설욕 의지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듯 한데, ‘트리거는 지난해 3월 일본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당한 0대 3 대패였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17세 이하 대표팀도 일본에 0대 3으로 크게 졌다. 그제(12일)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아시안컵 8강전에서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일본에 또 0대 3으로 무기력하게 졌다. ‘0대 3 노이로제가 생길 법 하다.

‘황선홍호의 경우, 2024 파리올림픽을 겨냥해 출범한 일본 21세 이하 대표팀에 완패를 했는데, ‘두 살 어린 팀에 패해 한국축구에 주는 충격이 상당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 축구협회는 물론, 벤투 역시 국내파 위주의 최정예를 선발해서 일본에 당한 패배를 되갚아야 한다는 논리를 갖고 있는 같다.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대표팀은 언제나 가능한 최상의 전력을 구축해야 하는 게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이 예상대로 각각 23세 이하, 21세 이하 대표팀으로 동아시안컵에 참가한다면? 자칫 ‘형들 데리고 나와서 동생들을 혼쭐 낸다는 모양새가 나올 수 있다. 혹시라도 비기거나 패한다면, 거센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겨야 본전인 셈이다. 물론, 이기고 우승하면 ‘훈장은 영원히 남는다.

그래도 국내파 최정예를 가동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나라처럼 연령대별 대표팀을 가동하는 등 보조를 맞춰야 할까. 상대국 전력 구성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축구협회와 벤투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때문에 벤투의 ‘자유의지가 강행된다면 ‘공정한 경기를 위한 마지막 공은 K리그를 관장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로 넘어간다. 동아시안컵 기간 K리그를 열지 않고 해당 기간 일정을 시즌 막판으로 연기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연맹은 ‘이론상 일정 연기는 가능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즌 막판 일정이 너무 촘촘해져 선수들 혹사 우려도 제기된다며 걱정하는 분위기다. 안그래도 K리그는 올해 11월 카타르월드컵이 개막하면서 지난 2월 조기 개막해 10월에 조기 종료되는 일정이라 여유가 없이 빡빡하다.

팬들과 약속된 일정을 이슈 때마다 변경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표팀 퍼스트에 맞춰 언제까지 K리그만 희생해야 하느냐”는 말도 나온다. 반대로 대표팀이 흥행해야 K리그 흥행으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여전한 논리도 나온다.

벤투와 협회, 일부 구단과 K리그. 과연 상생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14일) 저녁, 이집트전이 끝나면 만석 행렬이었던 A매치 4연전 축제가 끝나고, 다시 K리그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 문제도 함께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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