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작년에만 무려 50배…새해 벽두부터 치솟는 '하얀황금'의 정체
입력 2022-01-23 13:06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과거 '하얀황금'은 소금이었다. 옛 사람들에게 소금은 조미료이자 음식 부패를 방지하고 병을 치료하는 신성한 물질로 여겨졌고, 그래서 황금만큼 귀했다.
그런데 하얀황금 타이틀을 회백색 물질인 리튬에 내주게 생겼다. 소금은 흔해졌지만, 최근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호황을 맞아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리튬의 수요가 크게 오르면서 '귀한몸'이 됐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리튬은 주목받는 물질이 아니었다. 지난 2019년 6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제11회 국제 리튬 컨퍼런스'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일부 투자 업체가 리튬 공급 부족을 예견했지만, 수요·공급이 균형을 이루거나 공급이 앞선다는 의견도 많았다.
당시 모건스탠리는 리튬이 설탕과 비슷한 수급 패턴을 보여 항상 공급이 수요를 앞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기관 역시 초과 공급까진 아니어도 수요가 공급을 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작년 가격 수산화리튬 5배·탄산리튬 50배…이달 1.2배씩 추가 상승


몇 년 사이 상황이 바뀌었다. 전기차 수요가 늘고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전 세계 국가들이 전기차 대량 공급을 예고하면서 리튬 수요가 증가했고, 가격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리튬은 보통 배터리 제조사에 수산화리튬, 탄산리튬 형태로 공급되는데 수산화리튬은 국내 기업에서 주로 제조하는 NCM, NCA 등 고용량 하이니켈 배터리, 탄산리튬은 중국 기업이 주력하는 LFP 배터리에 쓰인다.
그런데 리튬이 수요가 늘기 시작하자 작년 한 해 두 원료의 가격이 각각 5배, 50배로 치솟았다. 올해 들어서도 1.2배씩 추가 상승하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 런던거래소(LME)에 따르면 수산화리튬 가격은 2021년 1월 킬로그램(kg) 당 57위안(약 1만 원) 선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31일에는 278위안(약 5만2000원)으로 5배가 됐다.
이달 들어서는 4일까지 278위안을 유지하다 21일 341위안(약 6만4000원)으로 치솟았다. 불과 20여일 만에 1.2배가 된 것이다.
탄산리튬은 상승폭이 더 크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탄산리튬 가격은 작년 1월 초 킬로그램 당 48.5위안(약 9100원)에서 작년 말 264.5위안(약 5만 원)까지 치솟아 1년 사이 50배가 됐다.
이달 들어서는 변동이 없다가 5일부터 상승해 20일 기준 333.5위안(약 6만3000원)이 됐다. 수산화리튬과 마찬가지로 20여일 만에 연초 가격의 1.2배가 됐다.
◆ 채굴 시설 증설은 난항…국내 기업 선점·재활용 나서


리튬 가격이 떨어지려면 수요 대비 공급량이 늘어야한다. 그런데 시장조사업체들은 향후 몇 년 동안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인텔리전스는 올해 리튬 공급량은 작년 49만7000톤(t)에서 63만6000톤으로 증가하지만, 같은 기간 수요가 50만4000톤에서 64만1000톤으로 늘어 공급량을 계속 초과한다고 예측했다.
업계는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이 풍부하지만, 채굴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커서 공급을 금방 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작년 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 세계 리튬매장량은 8600만톤이고, 볼리비아에 전체의 24.4%인 2100만톤이 매장돼 있고, 아르헨티나에 22.4%, 칠레에 11.2%가 매장돼 있다.
더군다나 채굴 기업들이 당국으로부터 인·허가를 얻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가 많고, 이 과정에서 환경단체의 반발에 부딪치기도 하는 상황이다.
예컨대 세르비아 정부는 이달 20일(현지 시각) 영국과 호주 합작회사인 '리오 틴토'의 리튬 광산 개발계획을 중단하고 이들을 축출한다고 발표했다. 작년부터 환경오염을 근거로 시민들이 주말마다 시위를 벌인 것이 이유다.
이 결정에 따라 리오 틴토사는 지금까지 투자한 24억 달러(약 2조9000억 원)와 함께 2027년부터 향후 40년 동안 리튬 230만 톤을 채굴한다는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외에도 지난해 미국 네바다주에서는 리튬 광산을 지으려는 업체가 인근 동물들의 서식지가 파괴된다고 주장하는 환경 단체와 조상들의 유골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원주민들과 소송을 벌였다.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리튬 가격이 치솟는 것도 문제지만, 수급이 불안한 것도 문제다. 이에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리튬을 선점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달 12일 호주 라이온타운과 2024~2028년 수산화리튬의 원재료인 리튬 정광 70만 톤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수산화리튬 1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삼성SDI는 2019년 중국 최대 리튬 생산업체인 간펑리튬 지분 1.8%를 사들이면서 수산화리튬 공급망을 확보했고,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폐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원료 재활용에 앞장서고 있다.
[김우현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