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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 뛰어든 김하성 "다른 팀 가면 주전? 그건 자만" [김재호의 페이오프피치]
입력 2021-10-05 00:02 
김하성은 메이저리그라는 정글에 뛰어들었다. 사진=ⓒAFPBBNews = News1
"선수들이 자주하는 말이 있다. 이곳은 '정글'이다."
지난 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파크에서 만난 김하성(26)은 메이저리그라는 세계를 '정글'로 표현했다.
정글이 어떤 곳인가. 선수의 말을 빌리자면 "누구를 안잡아먹으면 못하는 곳"이다. 밖으로는 상대팀과 치열한 경쟁이, 안으로는 동료들과 선의의 경쟁이 늘 존재한다. 건즈 앤 로지스는 '웰컴 투 더 정글'이라는 노래에서 정글을 '즐거움과 게임이 있는 곳'이라 묘사하면서도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싶다'며 정글의 잔인함에 대해 노래한다. 그 노래 가사처럼 빅리그는 잔인한 곳이다.
김하성은 2021년 그 정글에 뛰어들었다. 4년 2800만 달러 계약의 첫 해, 117경기에서 298타석을 소화하며 타율 0.202 출루율 0.270 장타율 0.352 8홈런 34타점을 기록했다. bWAR 2.1, fWAR 0.6, 수비에서는 DRS(Defensive Runs Saved) +9, OAA(Our Above Average) +3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빠른 속도로 적응했으나 타격에서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모든 다음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2021년을 "마음적으로, 야구적으로 힘든 한해였다"며 쉽지않은 한 해였음을 인정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모든 다음날이 내게는 처음이었다. 경험이 없다보니 다음 날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고, 하루하루가 힘들었다"며 낯선 무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야구는 다 똑같다고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분명 다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야구 선수들이 모인 곳인데 당연히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며 수준 높은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여기에 시차를 오가며 비행기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하는 빡빡한 일정도 그를 힘들게했다. 지금까지 순탄한 야구 인생을 살아왔던 그에게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이런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원하고 꿈꿨던 무대에 나가 수준높은 선수들의 공도 쳐보고, 이런 선수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엄청난 경험과 공부를 할 수 있었다"며 빅리그에서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고 말했다.

시즌 기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이 배우고 있다'고 밝혔던 그는 "내 야구 인생에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였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많이 보면서 좋은 야구를 많이 배웠다. 이런 경험들로 내년에는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하고 있다"며 희망을 얘기했다.
그는 "모든 순간이 감사하고, 야구를 더 잘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생겼다. 이전에도 발전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해왔지만, 1년간 시간을 보내며 더 깨닫고, 준비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지난 1년을 통해 배운 경험에 대해 말했다.
김하성은 구단 첫 노 히터의 마지막 아웃을 처리했다. 사진=ⓒAFPBBNews = News1

그때는 노 히터인지도 몰랐다
6개월간 162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이다. 그만큼 다사다난했다. 2021년 샌디에이고는 특히 그랬다. 구단 역사상 첫 노 히터를 달성했고, 한때 5할 승률에서 +17승을 기록하며 월드시리즈 우승 후보로도 거론됐다. 워싱턴DC 원정 도중에는 총격 사고로 구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9월 역대급 몰락을 경험하며 초라하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는 "모든 순간, 하루하루가 다 기억에 남는다"며 첫 시즌을 되돌아봤다. 여러 장면들이 있었지만, 4월 노 히터 때 9회 마지막 수비를 처리하며 구단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에 대해 그는 "투수가 잘한거였다. 우리는 그 투수를 도와준 것일뿐"이라며 스스로를 낮췄다.
'마지막 땅볼이 굴러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가'를 묻자 "똑같았다"고 답했다. "노 히터라는 것을 8회인가 9회 처음 알았다. 시즌 초반이라 내 수비에 집중했었다"며 기록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팀의 초라한 마무리에 대해서는 "정말 아쉽다. 좋은 성적을 낼거라 생각했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선수들 모두 아쉬워하지만, 그렇기에 내년에 모든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감독 경질설이 도는 등 팀 분위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뭐가 문제였나?'를 묻는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기려는 마음은 모두가 똑같지만, 그게 마음처럼 안된다. 그러다보니 어렵게 보낸 거 같다"는 답을 내놨다.
김하성은 매니 마차도,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등 장기 계약 선수들 사이에서 고군분투중이다. 내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 MK스포츠 DB

결국은 내가 잘해야
2021시즌을 마친 샌디에이고는 기대치에 못미친만큼, 선수단 내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일단 제이스 팅글러 감독은 경질이 유력하다. 코치진 대부분도 물갈이될 예정. 선수들도 안심할 수 없다.
그는 "나는 선수고, 내년에 준비할 것만 하면된다"며 이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말했다. "어떤 기회가와도 내가 못해서 못잡으면 소용없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한다"며 각오도 다졌다.
상황은 쉽지않다. 유격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2034년, 3루수 매니 마차도가 2028년까지 계약이 묶여 있다. 2루와 1루를 오가는 제이크 크로넨워스는 이번 시즌 올스타에 뽑혔다. 시즌 도중 팀에 합류한 애덤 프레이지어도 2022시즌까지는 샌디에이고가 보유할 수 있다. 비집고 나갈 틈이없다.
김하성은 "야구는 모르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내가 잘하면 좋겠지만, 서로 잘하며 공존하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다"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장기 계약에 묶인 주전들 사이에서 치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다른 팀에서 뛴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많이들 해봤을 것이다. 이를 기사로 옮긴 경우도 있었다. '디 어슬레틱'은 지난 9월 메이저리그에 두 개의 신생팀이 생긴다는 가정아래 실시한 '가상 확장 드래프트'에서 김하성을 31순위로 신생팀 내슈빌에 지명했다. "신생팀에서는 매일 뛸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예상도 덧붙였다.
그역시 '다른 팀에 가면 매일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팀에 가도 마찬가지다. 다 빅리그 선수들이고, 실력을 갖추고 있다. '어디에 가면 그렇게 될 거다' 이런 생각은 솔직히 자만이다. 내가 이 팀을 선택한 것이고, 잘해야한다"며 지금 팀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2시즌 내셔널리그에 도입이 유력한 지명타자제도는 그에게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는 "출전 기회는 많아질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것이 다 경험이다. 이런 것들을 토대로 더 잘 준비해야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에필로그
시즌 일정을 마무리한 김하성은 연고지 샌디에이고로 이동, 주변 정리를 한 뒤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오프시즌기간 그에게는 과제가 있다. 병역 특례의 대가로 봉사활동을 진행해야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학교 방문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봉사활동으로 선수들을 가르치며 훈련에 매진할 생각"이라며 나름대로의 계획을 밝혔다.
페이오프피치(payoff pitch)는 투수가 3볼 2스트라이크 풀카운트에서 던지는 공을 말한다. 번역하자면 결정구 정도 되겠다. 이 공은 묵직한 직구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예리한 변화구, 때로는 한가운데로 가는 실투가 될 수도 있다. 이 칼럼은 그런 글이다.
[샌프란시스코(미국) =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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