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에서] 얼떨결에 1호?...홍보 과욕이 부른 '국내 백신 1호' 혼선
입력 2021-02-26 15:57  | 수정 2021-02-26 16:12
사진 = 노원구청 보도자료

◆ 국내 백신 1호 접종자는 누구?

2021년 2월 26일 오전 9시.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지난해 1월 20일 이후 1년 37일 만입니다.

우리나라가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102번째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8일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람은 영국의 90대 할머니, 미국 1호는 이민자 출신의 흑인 여성 간호사, 일본 1호는 도쿄의료센터 원장이었습니다.

그럼 국내 백신 1호 접종자는 대체 누굴까?

국민의 관심도 쏠렸고, 정치권의 논쟁도 거셌죠.

하지만, 백신 접종 하루 전날인 25일 질병관리청이 1호 접종자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 정부 "국내 백신 1호 접종자 지정 안 해"

질병청 설명은 짧고 명료했습니다.

"국내 백신 1호 접종자를 한 개인으로 지정하지 않고 전국에서 동시에 접종을 시작한다."

특정한 한 명을 '1호 접종자'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접종이 시작되는 첫날에 의미를 두고 예방접종 시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럼 기자들은 접종 현장 취재를 안 했을까요?

했습니다.

26일 이른 아침부터 전국 곳곳의 보건소와 요양병원의 백신 접종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정부 설명대로 국내 백신 1호 접종자가 특정되지는 않더라도, 각 지역별로 1호 접종 장면은 챙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오전 9시가 되기 직전,

국내 백신 1호 접종자가 탄생했다는 긴급 속보가 전해졌습니다.

어리둥절했습니다.


◆ 난리 난 기자들

기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국내 백신 1호 접종자를 따로 지정하지 않는다던 정부 설명과 달리, 속보는 "국내 1호 접종이 이뤄졌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서울 노원구 상계요양원에서 일하는 60대 요양보호사였고, 접종 장소는 노원구 보건소였습니다.

전국 곳곳의 취재 현장을 찾은 기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접종은 오전 9시부터 전국 보건소와 요양병원에서 일제히 시작될 예정인데, 이미 국내 1호 접종자가 나왔다니요.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서울 노원구 보건소에는 오전 8시부터 접종 대상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밤샘 근무를 하신 분도, 백신을 맞고 나서 출근해야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접종을 좀 빨리하면 안 되겠느냐?"라는 부탁에 노원구가 편의를 봐 주는 차원에서 접종을 일찍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전 9시보다 14분이 이른 오전 8시 46분에 백신을 먼저 맞았습니다.

그리고 국내 백신 1호 접종자가 됐습니다.

일부러 의도한 게 아니라, 줄 선 분들을 배려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일찍 맞게 됐고 어찌하다 보니 국내 1호 타이틀을 차지하게 됐다는 게 노원구의 설명입니다.


◆ 남 탓이요

노트북을 다시 켰습니다.

노원구청이 보낸 이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발송 시간은 오전 9시 25분.

가장 공을 들였을 보도자료 제목에 '노원구, 전국 최초 1호 백신 접종'이라는 글씨가 선명했습니다.

제목에서 '전국 최초 1호'를 스스로 강조한 노원구청은 갑자기 언론 탓을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물어봤습니다.

"정부는 국내 백신 1호 접종자는 따로 지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잖아요. 그런데 왜 노원구는 '전국 최초 1호'라고 썼나요?"

답변은 이랬습니다.

"접종 대상자들이 피곤해 하는 상황이라 예정된 시간보다 미리 접종했고, 보건소에 취재 왔던 기자들이 '국내 백신 1호 접종자'이라는 취지로 기사를 냈다."

이미 몇몇 언론이 첫 접종자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고 보도했으니, 보도자료를 제목부터 '전국 최초 1호'로 달았다는 겁니다.

질병관리청은 펄쩍 뜁니다.

노원구가 오전 9시 이전 접종과 관련해 질병청으로 사전에 알려온 바가 없다는 겁니다.

노원구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질병관리청에서 공문으로 (오전 9시 전에 접종을) 하지 말라 이런 게 없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약속된 시간을 지키지 않아 얼떨결(?)에 1호 타이틀을 차지한 건 사실이지만, 노원구가 잘못한 건 없고 남 탓이라는 목소리로 읽힙니다.


◆ 1호가 맞긴 맞지만

국내 백신 1호 접종자.

오전 8시 46분 서울 노원구 보건소.

축하합니다.

문 대통령은 26일 오전 일찍 서울 마포구 보건소를 찾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적인 1호 접종인데 좀 지켜봐도 되겠습니까."

한 지인은 "문 대통령이 국내 1호 접종자를 지켜봤다기에 1호가 마포구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노원구입니까?"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온 국민의 관심사인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기회로 노원구를 홍보해 보겠다는 과욕이 혹시 무리수로 이어진 건 아닐까요?

질병청의 입장으로 글을 마칩니다.

"오전 9시 전국 보건소에서 동시 접종을 시작하기 때문에 이날 접종자 모두가 '1호' 접종자다."

[정주영 기자 / jaljalaram@mbn.co.kr]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