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국감서 반복 지적된 `재판 지연`…2년 전 경고 받고도 외면한 법원행정처
입력 2020-10-13 14:41  | 수정 2020-10-13 15:14
*2020년은 1월부터 8월까지 기준. [자료 = 대법원 사법통계]

법원행정처가 2년 전부터 "업무부담 증가로 재판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고도 이를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사에 휘말렸을 때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재판 처리율은 재판받을 권리와 직결된다. 김명수 대법원장(61·사법연수원 15기)은 취임 이후 줄곧 '좋은 재판'을 강조해 왔으나, 정작 재임 기간 동안 일반 시민이 법원의 '좋은 판단'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길어진 셈이다.
지난 2018년 12월 법경제학회가 법원행정처에 제출한 보고서 '법관의 각급법원 배치 효율화에 관한 연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법원에 접수되는 총 사건 수는 큰 변화가 없으나, 난이도가 높은 사건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특히 민사사건의 경우, 소송 금액이 커지고 복잡한 사건이 증가한 것이 어려운 재판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꼽혔다. 이로 인해 2005년부터 2017년 사이 법원의 총 업무량은 4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보고서는 법원행정처의 의뢰를 받아 만들어졌으나 제출된 이후에도 법원행정처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보고서는 비공개돼 외부에서 접근할 수 없게 막혀 있는 상태다.
보고서는 먼저 "업무량 증가에 대응하는 인력 조정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이는 판사들이 담당해야 할 업무량을 늘리고 사건 처리의 공정성과 신속성을 저하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질적 업무 부담이 증가하는 기간 동안 사건처리기간이 증가하고 항소율이 오른 것은 적절한 투입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실제로 민사합의 사건 처리율은 급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리율은 연간 접수된 사건 수와 처리된 사건 수로 나눈 지표다. 가령 처리율이 90%에 그쳤다면, 매년 접수된 사건 수의 10%가 처리되지 못하고 쌓인다는 의미다.
대법원 사법통계에 따르면, 민사 합의사건의 1심 처리율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94.9%와 93.8%를 기록했다. 2015년과 2016년, 2017년 민사합의사건 1심 처리율이 122.5%와 100.5%, 98.1%로 100% 안팎을 기록한 것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올해 8월까지 처리율은 79.2%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법원 휴정기가 늘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처리율 저하가 두드졌따. 고법 항소심 처리율 역시 2015년~2017년 모두 100%를 넘겼지만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80.3%, 89.7%에 그쳤다.
연구 책임자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원의 가장 큰 문제는 판사의 업무부담이 너무 높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법부의 성향이 통계보다는 규율과 법조항을 중요시 해 숫자를 모니터링하는 역량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에서도 연례 행사처럼 통계를 집계하기만 할 게 아니라 디테일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는 인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판사 정원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보고서는 "판사인력 확보를 위해 판사정원법 개정이 매우 중요하다. 2019년에는 면밀한 분석을 통해 향후 법원의 업무부담 추이를 파악하고 이를 입법에 반영하는 작업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판사정원법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판사 정원 증가를 규정하고 있으나 2020년 이후에 대해서는 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이 마무리돼 가는 지금까지 법원행정처에서는 판사 정원을 늘리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현재 법관 수도 정원에 비해 약 10% 모자란다. 이를 채우는 게 우선이며, 정원을 늘리자는 논의는 아직까지 없다"고 밝혔다.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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