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항공정비단지 뭐길래…인천 vs 사천 `신경전`
입력 2020-10-10 13:00 
인천시 등 지역사회와 인천공항 배후부지에 항공정비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 [사진제공=인천공항공사]

인천시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인천지역 사회가 인천공항 배후부지에 항공기 수리·정비·분해조립을 위한 항공정비단지(MRO)를 조성하겠다고 나서자 경상남도 사천시가 발끈하고 있다.
사천시는 2014년 8월 항공산업 특화단지, 2017년 12월 MRO 사업자로 지정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보유한 곳이다.
KAI는 2018년 항공MRO 전문업체인 KAEMS를 설립하고 지난해 제주공항 B737 초도정비를 시작으로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한 항공정비를 수행하고 있다. 경남도와 사천시는 1500억원을 투입해 사천읍 용당리 일대에 항공정비산업단지를 조성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3단계 사업중 내년 1~2단계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이런 와중에 인천시와 인천공항공사 등이 MRO 단지 조성에 나서겠다니 마음이 편할리 없다.

인천시와 인천공항공사, 인천경제청 등 인천 소재 9개 기관은 지난 7월 '인천공항경제권 추진협의회'를 공식 출범시키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인천이 지역구인 윤관석 의원과 배준영 의원은 아예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항공기 취급업과 항공기정비업, 교육훈련사업 등이 가능하도록 '인천국제공항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송도근 사천시장은 "중요한 시기에 인천지역 정치인들이 나서서 사천 항공MRO 사업을 짓밟으려 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 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달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 보류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국회에서 개정 법률안이 처리되지 않아도 MRO 조성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탓이다. 사천시는 개정 법률안 폐기를 위해 남해안 남중권 지지자체, 지역 상공인 등과 연대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인천, 왜 MRO 조성에 공들이나

경상남도 사천시에 있는 국내 최초 항공정비(MRO) 전문업체 한국항공서비스(KAEMS). [사진제공=KAEMS]
인천시와 인천공항이 공항 배후지역에 MRO 클러스터를 계획한 것은 해외 하늘길이 인천공항에 집중돼 있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국제선의 75%가 집중된 인천공항에서 민간 항공사들이 원스톱 정비를 받으면 항공기 지연·결항이 최소화되고, 잠재적인 정비위험을 제거해 국민안전이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인천공항은 국가 관문이자 글로벌 허브 공항이지만 항공정비 서비스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2001년 개항 이후 정비미흡으로 발생한 비정상 운항편(지연·결항)이 1만1324건에 이른다.
여객 안전 뿐만 아니라 MRO 등 항공 관련 사업이 코로나19 등으로 침체된 대한민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을 모멘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시와 인천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이 단순 항공 교통 거점 역할에서 벗어나 공항·항공 연계 산업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게임체인저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2030년 인천공항공사의 비전을 리딩 에어포트(Leading Airport)에서 리딩 밸류 크리에이터(Leading Value Creator)로 변경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공항경제권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하늘길 네트워크와 운송 기능을 갖춘 인천공항 인근에 공항·항공 연관 사업을 한데 모아 항공산업 혁신도시, 공항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만드는 사업이다.
크게 비즈니스·R&D 허브, 관광·물류허브, 첨단산업허브, 항공지원허브를 지향한다.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에는 배후 부지를 활용해 국제회의, 복합리조트, 항공정비단지(MRO), FBO(자가용 전용 터미널), 첨단조립가공 등 공항·항공 관련 직·간접 앵커(Anchor) 산업을 육성하고, 영종도 배후권역인 송도·청라국제도시, 남동공단, 강화 등에는 바이오 클러스터, 관광, 부품소재, 제품·인력 공급 산업을 조성해 인천공항 중심의 산업생태계를 완성하는 방안이다. 이미 싱가포르 창이공항, 미국 멤피스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네덜란드 스키폴공항 등은 이러한 개념의 공항경제권을 구축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인천공항과 인천시는 공항경제권이 완성되면 15조300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5만3000명의 고용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109조 세계 항공 MRO 시장...매년 3.7%씩 성장

국내 9개 항공사 항공기 정비비용.
항공산업은 항공기 제조업, 운송서비스업, 정비서비스업(MRO) 등으로 사업 영역이 구분된다.
이중 인천시와 사천시가 공을 들이고 있는 MRO는 운항 정비, 엔진중정비, 기체중정비. 부품정비 분야다. 항공기의 안전운항과 성능향상을 위한 정비, 수리, 분해조립을 망라한다.
특히 MRO는 항공기 운용기간(여객기 20년, 화물기 30년) 동안 수요가 반복되는 고수익 창출 서비스 사업이자 인건비 비중이 일반 제조업의 5배로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 초기 투자비가 높고, 전문 기술 노하우와 국제인증 등 진입장벽이 높아 시장 선점효과가 높은 사업으로 꼽힌다.
부가가치도 천문학적이다. 국제 컨설팅 전문기업인 올리버 와이만(Oliver & Wyman)에 따르면 항공 MRO 시장은 올해 907억 달러(약 109조원)로 연평균 3.7%씩 성장하고 있다. 2030년에는 1304억 달러(156조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MRO 시장은 세계 1위다. 올해 262억 달러(약 31조원)로 세계 시장의 29%를 차지하고 있다. 2030년에는 513억 달러(약 62조원)로 증가해 세계 시장의 39%를 차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세계 항공기 제조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 보잉 항공기는 2018년 2만5710대에서 2038년 5만660대로 10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중 1만9420대(38.3%)가 아태 지역 공항에 소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MRO 사업을 앞당겨 준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함께 국내에 MRO가 자리를 잡으면 국내 항공사들의 해외에서 쓰는 막대한 정비 비용을 국내로 돌려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9개 항공사들은 기체·엔진·부품·운항정비 등에 2조 7621억원을 사용했고, 이 중 46%에 달하는 1조2580억원이 해외 업체에 지불됐다.


MRO 분산 운영 정말 안되나?


사천시가 문제 삼는 것은 공항경제권 개념중 MRO 분야다. 사천과 인천공항에 MRO가 각각 조성될 경우 시장이 둘로 쪼개져 시너지 효과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송도근 사천시장은 "국내 MRO 사업자의 신규 수주물량은 연간 150억 원에 불과하다"면서 "이것을 둘로 나눠 윈윈하자는 발상은 서로 공멸하자는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천시는 A, B 체크라고 불리는 비행 전 점검의 경우 인천이나 김포에서 할 수 있지만, 비행시간과 관계없이 일정한 주기로 이뤄지는 이뤄지는 C,D 체크(중정비)는 사천에서 이뤄지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천공항공사가 직접 MRO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설립목적에 위배된다"면서 "한국공항공사법에는 1등급 운영증명을 받은 공항은 항공MRO사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업계는 인천공항공사가 한국공항공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데다 항공기정비시설법을 근거로 현행법으로도 MRO 조성이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항공기 점검·정비를 위한 항공기 정비시설은 공항 필수시설로 공항운영자인 인천공항공사가 관여하는 것은 설립목적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토부가 발표한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서 지역별로 MRO 산업의 육성을 위해 각자 노력할 것을 주문한 것도 근거가 되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해 12월 19일 밝힌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사천공항은 중정비(2주∼1개월), 김포공항은 저비용항공사 경정비(1∼2일), 인천공항은 해외복합 MRO 업체 유치(화물기 개조, 엔진업체 등)를 골자로 하고 있다.
결국 쟁점은 인천공항의 MRO 운영이 적법하느냐가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이 될 MRO를 한 지역이 독점 하느냐 아니면 분산 하느냐로 귀결된다. 항공 MRO 산업을 키우는데 무엇이 더 도움이 되느냐의 문제다.
인천공항측에서는 사천시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입장이다. MRO를 직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MRO 기업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지분투자나 합작, 사업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하겠다는 뜻인데 마치 인천공항이 직접 MRO 사업을 하겠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항공기 관련 핵심 기술은 보잉 등 항공기 제조사가, 운항 물량은 항공사가, 운송 플랫폼은 인천공항이 가지고 있으니 이러한 핵심 인프라스트럭쳐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해보자는 의미"라면서 "당장 MRO 사업을 직접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공항 전문가는 "MRO는 차세대 항공산업 핵심으로 단순히 지역 균형 발전 문제로 볼 문제가 아니다"면서 "세계 MRO 시장 잠재력을 고려할 때 한 곳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이 버거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래 한국폴리텍대 교수는 "경남도와 사천시는 몇년전부터 항공 정비 산업 활성화를 위해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면서 "국내 MRO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MRO가 생기면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자체와 정치권이 따로 따로 회의를 하고 토론회를 하면 더 분열될 수 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중심을 잡고, 지자체와 학계, 산업계가 모두 참여해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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