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제재에 베팅하기` 글로벌 투자자들, 중앙은행 개입 불구 스위스프랑 사재기
입력 2020-10-06 16:15  | 수정 2020-10-07 17:06
스위스 중앙은행(SNB) [사진 제공 = SNB]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사태로 전 세계 중앙은행이 돈풀기에 나선 가운데 요즘 외환시장 투자자들에서는 '스위스 프랑화'가 인기를 끄는 모양새다. 외환시장에서 프랑화는 미국 달러화와 더불어 안전자산으로 통한다.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이 불거지면 안전자산 선호 차원에서 프랑화를 매입해왔다. 다만 올해 3분기(7~9월) 이후부터는 앞으로 스위스가 미국의 '환율조작 관찰대상국' 리스트에서 빠질 가능성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스위스 중앙은행(SNB)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프랑화를 앞다퉈 사들이는 분위기다. 미국은 매년 4월과 10월 께 환율조작 관련 보고서를 낸다.
오는 11월부터 시작될 대선 일정을 앞둔 시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월터 리드 군 병원에서 치료받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5일 저녁(현지시간) 퇴원해 백악관에서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말하는 모습. [사진 제공 = 백악관]
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위스 중앙은행은 투자자들의 프랑화 사재기 열풍 속에 지난 2012년 이후 8년만에 최대 규모 외환 시장 개입에 나섰다. 지난 주 스위스 중앙은행은 처음으로 분기별 데이터를 공개했다.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중앙은행은 프랑화 가치 급변동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총 900억 프랑을 풀었다. 달러화로 치면 총 980억 달러 규모여서 우리 돈으로는 약 113조 7878억원이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역대 최대 규모 금액은 지난 2012년 1880억 프랑이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그간 연간 데이터만 공개해왔다. 다만 올해 상반기에 쓴 900억 프랑은 이미 2012년의 절반에 달한다.
중앙은행 개입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 프랑화 가치는 5.7%올랐다. 5일 기준 1프랑은 1.093달러(1달러 당 0.916프랑)와 맞먹는다. 코로나19 사태 탓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무제한 양적 완화에 나서면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WSJ달러인덱스가 같은 기간 1.2%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프랑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오른 셈이다. 달러인덱스는 주요국 통화 바스켓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지수다.
금융데이터 분석업체 팩트셋 데이터에 따르면 3분기 이후 프랑화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상품 거래가 1만 계약을 넘어섰다. 1만 계약을 넘어선 것은 3분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3분기들어 평균치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추세는 단순히 코로나19사태 불확실성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수요가 몰린 결과로만은 볼 수 없다. WSJ는 스위스가 조만간 미국의 '환율조작 관찰대상국' 리스트에서 빠질 가능성에 베팅한 투자 열기가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앞서 1월 13일 미국 재무부는 '주요 교역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환율보고서)를 내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아일랜드, 베트남,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스위스, 싱가포르 등 10개 국가를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특히 지난 해 5월 보고서 때와 달리 올해 스위스가 새로 추가돼 눈길을 끌었었다.
투자자들이 프랑화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프랑화가 강세를 보일수록 스위스가 미국으로부터 환율 조작 관련 제재 움직임에 휘말릴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 선거인단 선출을 앞둔 시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인 상황은 트럼프 정부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UBP의 피터 킨셀라 글로벌 총괄 담당자는 "지금 시점에선 미국이 스위스에 대해 공격적 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 정부에는 더 중요한 이슈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께 환율 보고서를 낸다. 다만 지난해에는 10월 발표 예상이던 보고서가 '미·중 1단계 무역협상'과 맞물리면서 연기됐다가 1단계 협상이 거의 마무리된 시점인 올해 1월 나왔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관찰대상 판단 기준은 세 가지다. △대미 무역흑자 100억 달러 초과 △해당 국가 국내 총생산(GDP)의 2%를 초과하는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 △지속적·일방적인 외환시장 개입이다. 재무부 판단에 따라 이 중 두 가지에 해당하면 미국은 해당 국가를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한번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되면 다음 보고서에서 두 번 연속 1개 조건에만 해당하거나 어떤 조건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야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된다. 한국은 지난 2016년 4월 이후 줄곧 관찰대상국이었다. 올해 1월 보고서 발표 당시 스위스는 대미 무역흑자가 100억 달러를 초과했고, 스위스 중앙은행이 당시를 기준으로 최근 6개월간 연간 서비스·재화 생산 규모의 10%이상을 외환시장 개입에 사용한 것으로 판단돼 관찰대상국이 됐다.
올해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해 눈에 띄는 움직임은 베트남 견제다. 지난 2일 저녁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베트남에 대한 환율조작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중국산 제품이 베트남을 통해 미국으로 우회수출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취지라는 현지 언론 분석이 따른다. 앞서 미국은 같은 조치를 통해 중국산 제품에 수십억 달러 관세를 물렸었다.
베트남이 환율을 조작했다는 결론이 나오면 미국은 베트남산 제품에 대해 무역법 301조(슈퍼301조)를 근거로 보복 관세를 물릴 수 있다. 앞서 8월 미국 재무부와 상무부는 베트남이 환율조작을 하고 있다고 판정한 바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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