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짜 검사실 차려놓고 `화상 보이스피싱`…모친 유산까지 피해
입력 2020-09-23 14:29  | 수정 2020-09-23 15:25

영상통화를 동원한 새로운 수법의 보이스피싱(전기통신금융사기)에 1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3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지난 7일부터 9일 사이 피해자로부터 1억4500여만원을 갈취한 보이스피싱 일당을 추적하고 있다"며 "경기남부 모처에서 검거된 보이스피싱 일당 중 1명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피해 여성 A씨는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의 윤선호 수사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A씨 명의의 여러 시중은행 통장이 범죄에 연루돼, A씨가 대포통장을 양도한 가해자인지 정보를 도용당한 피해자인지 밝히기 위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남성은 약식조사 녹취를 시작해야 한다며 A씨가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하도록 한 뒤 "담당 검사를 연결해 줄 테니 무고한 피해자로 입장받으라"고 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성재호 검사'라는 남성이 전화를 이어 받아 A씨의 통장이 '중고나라' 등에서 벌어진 조직 사기에 사용됐고, 이 통장에 6400만 원의 피해액이 입금됐다고 주장했다. 또 A씨가 스스로 피해자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2주 뒤 법원에 나와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A씨에 대한 압박은 10여명이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쉴 새 없이 지시와 협박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일당은 화상 공증을 한다며 검사실로 꾸민 장소에서 A씨와 영상통화를 하고,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들의 날인과 서명이 있는 가짜 공문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휴대전화에 '법무부 공증 앱'으로 꾸민 피싱 앱을 설치하도록 해 A씨가 일당과 연락하는 용도 외로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밤에도 취침 전까지 1시간마다 위치를 보고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은행 10여곳을 돌아다니며 1억4500만원을 인출해 수차례에 걸쳐 '내사 담당 수사관'이라는 남성 등에게 전달했다. 이 돈은 어머니의 유산을 비롯해 A씨가 7년 넘게 모은 청약통장과 적금, 보험 등 거의 전 재산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CCTV를 토대로 6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다른 피의자가 택시에 타는 모습을 포착하고 나머지 조직원들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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