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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김민희 `도망친 여자`, 사생활 넘어 찬사세례[MK무비]
입력 2020-09-12 08:00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국내외 분명한 온도차, 이번엔 다르다.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홍상수 감독의 24번째 장편영화 도망친 여자가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안긴 데 이어 제16회 루마니아부쿠레슈티영화제에서는 최고 각본상을 수상했다. 작품 공개 후 국내 매체와 평단으로부터도 호평 세례를 받고 있다.
점점 빠져든다. 인물들의 숨은 진심에, 메가폰의 수수께끼 같은 진실 게임에. 어쩌면 오래전 도망쳤을 지도 모를 내 안의 소리에까지. 여전히 비밀스럽고도 통쾌하고 복잡한 듯 단순하다. 그러나 그간의 작품들 가운데 홍상수 감독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 ‘도망친 여자다.
영화는 주인공 감희(김민희)가 번역가인 남편과 결혼한 뒤 5년간 단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남편의 출장으로 자유롭게 외출하면서 벌어지는 일상을 담는다. 오랜 만에 옛 친구들을 만난 감희는 차츰 그 동안 도망쳐왔던 내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감희가 처음 만난 사람은 얼마 전 이혼한 영순(서영화).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지만 오랜만에 집으로 찾아온 감희 때문에 술도 많이 마시고 (채식주의를 지향하지만) 고기도 많이 먹는다. 따뜻한 배려로 시종일관 감희를 대접하지만 3층은 집안의 가장 더러운 공간이라며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감희는 이에 비밀이 뭐냐고 물으며, 언니는 나를 믿지 못한다”고 말한다.
감희가 만난 또 다른 지인은 수영(송선미). 옛날에 감희와 좀 까불고 놀았던 언니다. 필라테스 선생을 해 큰돈을 저축했고, 그 돈으로 재미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모든 게 순조로운 듯 하지만 결국엔 속내를 다 털어놓는다. 감희는 피곤해하는 수영에게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 나는 언니를 믿는다. 잘 할 거다”며 응원한다.
마지막은 여정은 영화 관람. 감희는 그곳에서 우연히 옛 친구 우진(김새벽)과 그의 남편과 마주친다. 유명해진 자기 남편이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내미가 떨어지고 있는 우진은 감희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한다. 감희는 괜찮다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고, 괜히 그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자 옛 남자였던 그와 마주하자 그 찰나의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어버린다. 말 좀 그만하시는 게 좋겠다”며 돌직구를 날린다.
감희는 매번, 사람들에게 우리 부부는 5년간 떨어져 본 적이 없어.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있어야 한데. 그게 자연스러운 거래”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나는 운이 좋다” 괜찮은 것 같다”는 반응을 덧붙인다. 허기진 모습으로 계속해서 음식을 먹어 댄다.
마침내 관객들은 터져 버리는 감희의 감정 속에서, 그간의 반복적인 말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도망치는 건 곧 감금이요, 진심의 외면은 진실한 소통과 삶의 주체성에서 점차 멀어지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와 있냐고.
홍상수 감독의 수수께끼는 그 어느 때보다 비밀스러운 동시에 솔직하고 가식이 없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섬세하고도 섬뜩하고 동시에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영화 속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훔쳐본 뒤에는 나에 대한 질문으로 여운이 가득 찬다. 그의 사생활 과는 별개로, 충분히 빠져들 만한 강렬한 매력이다.
‘도망친 여자는 현재도 각지의 굵직한 해외 영화제의 초청이 잇따르고 있다. 제58회 뉴욕영화제, 제69회 만하임-하이델베르크국제영화제, 제21회 도쿄필름엑스 등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을 받으며 사생활 논란 이후 가장 뜨거운 찬사를 받고 있다. 오는 17일 개봉.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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