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값싼 `미끼매물` 사라지자…전셋값 1.5억 비싼 진짜 매물만 남아
입력 2020-08-24 17:45  | 수정 2020-08-24 22:40
◆ 혼돈의 부동산시장 ◆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법 시행을 계기로 전세 매물이 급감한 데 이어 이번에는 매매 매물마저 급감하고 있다. 21일 허위·중복 매물을 올린 공인중개사에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네이버 등 온라인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이는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였다기보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중복 매물'이 신고제 실시로 사라지면서 실제 매물만 남게 돼서다.
손님을 유인하기 위한 최저가 매물이 걷히자 공급이 부족한 시장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며 집주인들이 '배짱 호가'를 던지고 있다. 매물이 씨가 마른 임대차 시장은 특히 허위·중복 매물 신고제가 겹쳐 전월세 구하기를 더욱 힘들게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아파트 실거래가 분석 서비스 '아실'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 전국 아파트 매매 매물은 전북을 제외하고 모두 감소했다. 특히 가장 많이 감소한 서울은 아파트 매물이 지난 17일 5만6451건에서 24일 4만1939건으로 25%나 줄었다. 허위 매물로 인한 피해나 투기적 수요를 막는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호가 상승 등 부작용도 현실화하고 있다. 송파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공인중개사들이 허위 매물을 올렸다가 이를 거둬들인 것도 물론 있겠지만 실제는 집주인들이 (양도세) 세금 부담 등으로 매물을 거둬들여 실제 매물이 줄었다"면서 "이제야 공급이 부족한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일명 '미끼 매물'이 사라지면서 매물 호가가 뛰고 있다. 그동안 공인중개업소들이 손님을 유인하기 위해 집주인의 호가보다 더 저렴한 가격의 매물을 올리거나, 최저가 매물이 거래됐는데도 중개 사이트에 그대로 올려놓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최저가' 매물이 사라지면서 집주인이 원하는 호가가 반영된 매물이 그대로 드러나게 됐는데 이전 실거래 최고가보다 높은 가격이어서 매수자들의 '체감 호가'가 올라갔다. 예를 들어 송파헬리오시티는 전용 49㎡ 매매 호가가 15억5000만~16억원대로, 나와 있는 모든 매물이 최근 최고가(13억7000만원)보다 높다. 서울 도곡렉슬 전용 84㎡ 매물 최저 호가도 27억원으로 종전 최고가(26억5500만원)보다 높다. 한 달 전만 해도 26억원대 매물이 쌓여 있었다. 도곡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미 팔렸는데 그냥 올려 둬서 가격이 내려간 매물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집주인들의 호가를 그대로 올릴 수밖에 없어 집값을 더 부르는 매도자 심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취득세·양도세 강화로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매물 자체가 줄어들어 '허위·중복 매물 신고제'가 오히려 호가 상승세를 자극한다는 설명도 나온다.
서울 광장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최저가 매물을 올릴 수 없으니까 매수자 입장에서는 집주인 호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최저가 호가가 나와 있으면 집주인들이 그게 시세인 줄 알고 맞춰서 올리거나 중개사의 재량으로 조금 내려서 올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집주인 호가가 그대로 시세가 된다"고 했다.
전세 역시 매매와 마찬가지 상황이다. 21일 공인중개사법 개정안(허위 매물 단속) 시행 이후 시세보다 저렴한 소위 '미끼 매물'들이 빠르게 정리되고 실제 시세에 맞는 매물만 남으면서 시세가 급등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초구 서초푸르지오써밋의 경우 허위 매물 단속이 시작된 이후 전용 97㎡ 전세 매물이 현재 호가 14억5000만원짜리 하나만 남아 있다. 이는 직전 최고 실거래가 13억원보다 1억5000만원이나 높은 가격이다. 부동산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 단지는 단속 시점을 전후로 전세 매물이 일주일 새 100건 넘게 증발(116건→9건)해 버렸다.
서초구 인근 한 공인중개업자는 "단속 이후 매물이 싹 사라지면서 각 부동산이 직접 집주인에게 의뢰받은 소위 '전속 매물'만 남아 있는 상태"라며 "전세 매물이 워낙 귀해 집주인이 부르는 대로 가격이 정해지고 보증금 흥정도 어렵다"고 전했다.
미끼로 쓰이던 저가 매물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시세가 마치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집주인들이 향후 새로운 전셋집을 내놓을 때는 아무래도 시세를 반영해 호가를 올리기가 이전보다 편해졌다는 설명도 있다. 물론 허위 매물 단속은 온라인 부동산 시장의 투명화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는 설명이 많다. 윤지해 부동산114 연구원은 "미끼 매물이 사라지면서 당장은 호가가 올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세에 맞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임대차법과 현 정부 들어 총 23차례에 달하는 강력한 거미줄 규제를 쳐 놓아 전세 매물 급감과 매매 매물 급감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허위 매물 단속이 '매도자 우위' 시장을 강화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든 매매든 공급이 귀한데 이 같은 상황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시장에 가격 상승 심리를 주고 있다. (공인중개사들 간) 경쟁을 통한 네고(가격 인하) 가능성도 없어 상승장에서는 매수자 입장에서 정보의 비대칭 등으로 인한 정보 왜곡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선희 기자 / 정지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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