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세입자 "5% 넘게 올려줄테니 더 살자"…헛도는 `전월세 상한`
입력 2020-08-24 17:45  | 수정 2020-08-25 01:02
◆ 혼돈의 부동산시장 ◆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전세사는 A씨는 자녀 학교 문제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수 없는 상황이다. 임대료 인상폭을 최대 5%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됐지만, A씨는 주인집에 먼저 연락해서 전세금을 5% 넘게 올려줄테니 재계약하자고 얘기했다. 집주인은 찝찝해했지만 A씨가 간절하게 부탁하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첫 입주할 때 시세보다 저렴했던 전세보증금 14억원을 시세 수준인 17억5000만원까지 25%나 올려 지난 1일 전세 계약을 맺었다.
지난달 31일부터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됐지만, 세입자 스스로 상한선 5%를 넘겨 재계약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도 집주인과 세입자 간 합의를 하면 5%상한선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서 전세시장이 공급자 우위가 될수록 당분간 이런 일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임대차2법이 시행된 이후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원치 않는 곳에 살게 되는 딜레마가 늘고 있다. 자녀 학교 가까운 곳에 전세 살던 세입자는 멀리 이사를 가고, 자녀 교육을 다 마친 집주인이 학군 좋은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세입자 스스로 상한선 5%를 넘겨서 재계약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이런 계약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세입자가 임대차2법을 제대로 알고 있고, 이 계약이 불리하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했으면 계약갱신 시 임대료를 5% 이상 올려줘도 된다. 대신 이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 1회가 남아 2년 후에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집주인 강압에 의해서 세입자가 어쩔 수 없이 임대료를 5% 이상 올려줬다면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인간 합의에 의해 한 계약은 임대차2법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면서도 "단 임대인의 강압이 있었고 세입자가 5% 이내 임대료 인상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경우에는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세시장은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24일 KB부동산 주간 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주(17일 기준) 서울 지역 전세수급지수는 전주(186.9)보다 2.7포인트 더 올라 189.6을 기록했다. 정부가 '임대차3법'을 비롯해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강한 규제를 내놓을 때마다 올라가면서 지난 2015년 10월 첫째 주(190.6) 이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전세수급지수는 전세 수요 대비 공급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0에서 200 사이의 숫자로 표시된다. 100보다 수치가 높을수록 전세 공급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200에 근접했다는 것은 전세난이 심화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입자는 재계약하기 위해 스스로 임대료를 5% 이상 올려주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세입자가 중고등학생 자녀를 두었거나 첫 입주 때 시세보다 저렴하게 전셋집을 구한 입주한 지 2년 된 아파트에서 주로 빚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세입자가 재계약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세금 문제로 집주인이 돌아오면 세입자는 이사를 갈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전세 사는 B씨는 집주인에게 시세만큼 전세금을 올려줄테니 재계약하자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집주인이 보유세 부담을 덜어내려고 다른 지역 집을 팔고 대치동 집으로 들어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학군이 좋은 곳은 자녀가 중고등학교를 마치는 최소 6년 동안 거주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세입자가 집주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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