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 정규직 늘리랬더니 퇴직금잔치?…고용정보원 퇴직금 충당 10배 늘어
입력 2020-08-24 12:38  | 수정 2020-08-31 13:37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사정 협약식 서명을 마친 노사정 주체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문 대통령, 손경식 경총 회장,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문성현 경사노위 위...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공공기관의 또다른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령 적자가 나더라도 정규직을 많이 늘릴수록 공공기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성과급을 그만큼 더 받을 수 있고, 이는 나중에 받게 될 퇴직금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가 현정부들어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규직 확대를 명목으로 인건비를 일단 과도하게 편성한 뒤에 남은 금액을 기존 정규직 퇴직금 충당에 쓴 곳도 나타났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공공기관 직원들 미래 퇴직금 적립으로 고스란히 들어간 셈이다.
24일 미래통합당 정책위 의장인 이종배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고용정보원 직원들의 퇴직금 충당금이 2년새 10배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과정은 이렇다. 고용정보원은 지난 2018년에 정규직 인원을 전년 대비 43명, 2019년엔 57명을 각각 더 뽑았다. 전체 인원(2020년 기준)이 404명임을 고려하면 총인원 중 25%에 달하는 정규직이 최근 2년새 늘어난 셈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만큼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기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정규직을 급격하게 늘리는 과정에서 인건비를 실제 필요한 것보다 과도하게 요청했다는 점이다. 고용부는 지난해 고용정보원 인건비로 246억 6800만원을 편성했는데, 이중 2019년 증원한 정규직 57명의 인건비가 16억1800만원에 달했다. 당시 통합당 예산결산특별위원들은 이에 대해 "도대체 몇 명을 한번에 늘리는 거냐. 과다한 증원이다"고 주장하며 6억4000만원을 삭감했다. 결국 증원된 57명에 대한 인건비 최종 예산은 9억7800만원으로 줄여서 확정됐다. 전체 인건비 예산도 240억2800만원으로 줄였다.
하지만 이종배 의원이 8월 결산국회를 맞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고용정보원이 작년 인건비로 쓴 실제 금액은 221억6300만원에 불과했다. 예산을 한차례 삭감했음에도 쓰고 남을 만큼 과도하게 계상했다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남은 돈 18억 6500만원은 한국고용정보원 직원들의 퇴직급여충당금으로 고스란히 적립됐다. 실제 최근 3년간 한국고용정보원의 '퇴직급여충당금 적립 현황'을 분석해보면, 2017년에 퇴직금 충당금으로 넘어간 인건비 잔액은 2억 6783만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0억 1175만원 수준으로 대폭 늘었다. 남는 나랏돈을 자신들의 미래 퇴직금을 채우는 데 사용한 데 따른 결과다. 이종배 의원은 "국민 혈세를 과다 계상하고 불용액을 발생시키는 건 정작 예산이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없게 한다"며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사업은 면밀히 검토해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이도록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물론 이 돈이 전부 퇴직금으로 쓰이는 건 아니다. 인건비 중 쓰지 못한 돈을 일단 퇴직금 충당금으로 쌓아두는 게 관례고, 필요한 지출이 발생할 때는 다시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 경영평가 기준과 공공기관 퇴직급 산정 기준이 현 정부 들어 급격히 바뀜에 따라 이 돈들은 실제로 퇴직금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현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급격한 정규직화 → 공공기관 평가 상승 → 퇴직금 증가의 고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규직을 크게 늘리면 공공기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성과급을 많이 받을 수 있고, 결국 더 많은 퇴직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리가 형성돼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바뀐 룰에 따르면 그렇게 된다. 먼저 기획재정부는 매년 7월 129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경영성과를 발표하는데, 현 정부들어 기준이 크게 바뀌었다. 100점 만점에 19점이던 '사회적 책임' 부문이 30점으로 늘어나고, 재무실적에 해당하는 '일반 경영관리'는 31점에서 25점으로 배점을 줄어들었다. 6년 만에 적자를 내고서도 경영평가에서 B등급을 유지한 한국전력처럼 정부 기조만 맞추면 높은 점수를 받는 구조다.
또 작년말 기획재정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퇴직금 산정 때 성과급을 포함하고 이에 따른 추가 인건비를 내년 재정에 반영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2020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에서 '경영평가 성과급은 퇴직금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삭제한 것이다. 2018년 10월 한국감정원을 시작으로 한국공항공사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마사회 등의 퇴직금 소송에서 대법원은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지급 대상과 조건 등이 규정돼 있다면 퇴직금 산정 기준에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물론 성과급이 고정성·일률성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사측이 판단하면 지급하지 않아도 되지만, 최근 정기상여도 통상임금이라는 기아자동차 대법원 판결도 나온만큼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대해 고용정보원 측은 "2019년도 인건비 잔여액의 대부분은 예상치 못하게 증가한 육아 사유 등으로 인한 휴직(27명) 및 퇴직(9명), 기 반영된 퇴직급여충당금에 따른 인건비 잔여분 등이다"며 "퇴직급여충당금 70% 미만 적립기관에 해당해 인건비 관련 이자수익 등 결산 잉여금을 퇴직급여충당금에 우선 적립할 수 있어 이사회 의결을 거쳐 적립했다"고 해명했다. 또 작년 증원인력(57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증원이 아닌 국가일자리정보플랫폼 구축,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평가, 청년고용허브 구축 등 신규 사업 수행을 위한 정원 증원 반영결과라고 덧붙였다.
[김태준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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