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SNS 접은 소설가 공지영, 좋은 글 쓰시길
입력 2020-08-14 09:36  | 수정 2020-08-21 09:37

소설가 공지영씨가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SNS 절필 선언을 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요 며칠새 공씨와 페이스북 설전을 벌였던 김부선씨가 이 선언을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공 작가는 "세계 꼴찌의 폭력배 같은 언론에 이 사실조차 알리고 싶지 않다"며 친구 공개로만 글을 올리고 공유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꼴찌'에 '폭력배' 소리들어가며 공 작가에게 관심을 표하려니 좀 멋적긴 하다. 그래도 나는 귀가 번쩍 뜨일 만큼 이 소식에 관심이 간다. 그리고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고 있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녀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은 한 칼럼에서 인터넷 또는 신문지상에서 공씨 관련 기사를 마주치는 곤욕스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골목길에서 죽은 쥐와 마주칠 때 느끼는 전율과 비슷하다고 했다. 쥐의 사체를 피해 길을 돌아가듯 잽싸게 기사를 건너뛰었다. 이제 그럴 일이 없어졌다. 김부선은 대단하다. 천하의 공지영을 절필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칼럼에서 특정인을 비판할 수 있지만 호오를 드러내는 것은 저질스럽다. 지금 이 글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한데 붓이 잘 통제가 안된다. 이 글이 저질이라면 그것은 내 수준의 문제이지 결코 글의 대상 수준에 문체가 따라가기 때문은 아니다.
내게 공지영을 품평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소설을 한권은 커녕 한줄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광고 문구로 본 적은 있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공지영이 페북보다는 소설로 유명했던 시절, 그러니까 그녀의 캐릭터에 대해 아무 선입견이 없던 시절에도 읽지 않았다. 나는 다독보다 정독이 유익하다는 주의인데 정독의 최대 단점은 책을 고르는데 시간이 걸리고 그 기준이 쓸데없이 높아져 웬만한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제한된 독서 목록에 공지영이 들어갈리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해 내가 공지영에 대해 아는 것은 SNS에 올린 글이 전부이고 그조차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본 것이며 요 몇년새는 죽은 쥐 피해다니듯 하느라 제목 외에는 거의 보지 않았다. 내게 그의 글은 그저 소음, 그것도 찢어지는 악다구니같은 소음이었다. 화가 나기보다는 귀를 막고 싶어지는 그런 소음 있지 않은가.그의 절필 선언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좋은 대통령을 만나 코로나도 잘 이겨내고 경제성장율도 세계 1위,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세계 몇 위 일까. 이 거칠고 사나운 세상에서 자신의 품격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나는 그녀의 기사를 보면서 '무슨 작가가 모국어의 심성을 이렇게 파괴하나'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런 공 작가가 '한국 사람의 마음은 몇 위?'라고 묻고 있다. 마음의 응어리를 어루만져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키는게 작가 아닌가. 공 작가가 SNS에 올린 글에 두통을 느낀다는 사람은 수없이 봤어도 카타르시스 느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욕설에서 느껴지는 배설적 쾌감을 카타르시스라고 한다면 있을수도 있겠다). 어떤 공격에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를 상처주는데도 주저함이 없는 SNS 여전사로 살아오더니 느닷없이 '품격을 지키며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본인에게 굉장히 안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공 작가는 "그동안 감사했다. 나를 잊어 달라. 가끔 오래 곰삭은 책으로 만나겠다"고 작별을 전했다. 본업인 소설로 돌아가겠다는 말인 것같다. 잘 생각하셨다. 작가의 처신이 모범적이라고 위대한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서머싯 몸은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작가 10명과 그 작품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몸은 "10명중 제인 오스틴과 찰스 디킨스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정상적인 삶과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다. 발자크는 돈을 물쓰듯하고 빌린 돈은 갚는 법이 없었고 사랑은 난봉에 가까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 중독에 땡전한푼 없으면서 자기가 제일 잘난줄 아는 '왕재수'였고 에밀리 브론테는 동성애에 우울증이 의심되는 외톨이였다. 성격적 결함은 위대한 작품을 쓰는데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너무 부담을 준 것인가. 그럴 뜻은 없었다. 세상에 모든 작가가 반드시 위대한 작품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하지 않으면서 읽을만한 소설도 많다. 읽을만한 소설을 쓰는데 훌륭한 인격 따위는 필요없다. 공 작가가 다시 왕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길 바란다. 정치면 가십란 말고 신간 소개란에서 그 이름을 봤으면 좋겠다. 물론 책 안목이 까다로운 나는 사 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열망하는대로 기꺼이 잊어 드리겠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