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피소 사실을 언제 알았을까
입력 2020-07-16 14:11 

지난 10일 오전 0시1분께 숨진채로 발견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성추행 의혹 피소와 관련이 있다는 추정이 사실상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피소 사실을 알았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 전 시장이 사망사기 전 접촉한 전현직 서울시 정무라인 관계자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데다 '박 시장의 피소 사실을 몰랐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역시 함구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는 지난 8일 오후 3시께 시장 집무실을 찾아갔고 그날 밤 박 전 시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박 전 시장은 다음날 오전 10시 44분께 집을 나섰다. 이후 박 전 시장은 오후 1시 39분 고한석 전 비서실장과 마지막 통화를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임 특보는 "박 전 시장에 관한 '불미스러운 얘기'를 외부 관계자로부터 듣고 시장실로 달려가 업무 중이던 박 전 시장에 '실수한 것 있으시냐'고 물었으며, 당시 박 전 시장은 '글쎄, 바빠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임 특보의 말대로라면 박 전 시장은 그 시간까지 피소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무실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박 전 시장에게 임 특보가 불쑥 찾아간 것은 임 특보가 당시 들은 얘기가 단순히 풍문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중대한 내용이었음을 시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후 박 전 시장은 오후 7시께부터 9시께까지 성북구의 한 식당에서 전현직 구청장들과 모임을 가졌으며 당시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는 게 모임 참석자들의 얘기다. 이어 박 전 시장은 8일 밤에 임 특보와 변호사 자격이 있는 1명을 포함한 비서관 2명 등과 '현안 회의'를 가졌다.
임 특보는 당시 회의에 대해 "늘상 하던 현안 회의였다"면서도 "시장님이 '낮에 이야기했던 게 뭐냐? 다시 해봐'라고 했다"고도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때 어떤 식으로든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얘기가 거론됐다는 것이다.
박 전 시장이 전현직 구청장들과 저녁 모임을 하고 나서 밤에 이런 회의를 했다는 것도 당시 논의된 내용이 심상치 않았음을 시사한다.
9일 오전 9시께는 고한석 전 비서실장이 시장 관사를 찾아가 박 전 시장과 얘기를 나눴다. 이어 오전 10시 10분께 고 전 비서실장이 관사에서 나와 근처 길을 지나가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포착됐다.
오전 10시 40분께 서울시가 기자단에 문자메시지로 당일 시장 일정 취소 사실을 알렸다. 오전 10시 44분께는 박 전 시장이 관사를 나오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고 전 실장은 15일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면담 당시에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이나 임 특보의 보고 내용을 몰랐다"는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이어 오전 11시 20분과 정오 등 2차례에 걸쳐 서울시 관계자라고 신원을 밝힌 사람이 북악산 안내소에 전화를 걸어 박 전 시장이 들르지 않았느냐고 문의했다. 이 시점에서 서울시 측은 박 전 시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음을 이미 파악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 전 시장은 외출 중이었던 오후 1시 39분께 고 전 실장과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으며, 오후 3시 49분께 성북동 소재 핀란드대사관저 근처에서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겼다. 이어 박 전 시장의 딸이 오후 5시 17분께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선 경찰은 10일 0시 1분께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박 전 시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박 전 시장의 알려진 행보만을 보면 피소 사실이나 또는 피해자의 고소 움직임을 8일 오후나 9일 오전에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고 임 특보의 면담, 밤 중 대책회의, 고 전 실장의 시장 관사 방문 등이 모두 심상치 않은 행보이기 때문이다.
정보 전달 경로에 대해 일각에서는 청와대 등 정부기관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시 정무라인에 얘기가 들어갔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결국 이 같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이유다.
[이상규 기자 boyondal@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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