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핫이슈] 20년 만에 손보는 간이과세 논란
입력 2020-07-09 09:02  | 수정 2020-07-16 09:07

요즘 정부가 내놓는 세제 개편안은 뭔가 엉성하게 꼬이는 모양새다. 주식양도세 부과 방안이 월별 원천징수, 펀드 차별 등을 둘러싸고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발표된 지 2주일도 채 안돼 바뀔 처지에 놓였다. 이번엔 자영업자 부담을 줄이겠다고 검토 중인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완화 방안이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2000년에 과세특례 제도를 폐지하면서 신설한 부가세 간이과세 적용 기준액의 상한선을 올리는 걸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영세 소상공인에게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의도다. 한데 구체적인 안이 공식적으로 제시되기도 전부터 말이 많다. 그 동안 세부담 형평성과 세제 투명성을 해친다며 기준 완화에 반대하던 정부가 코로나19 충격을 들이대며 정치권에서 거세게 압박하자 무릎을 꿇는 모습인데다 자칫 세정 원칙도 못 지키고 민심도 못 얻으면서 세수만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적잖다.
부가세 간이과세는 영세 소상공인이 세금 납부를 편하게 하고 세부담도 덜도록 해주는 제도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연간 매출액이 48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면 세금계산서 발급 의무를 면제 받고 업종별로 부가가치율(5~30%)을 차등 적용해 세금 부담도 줄여 준다. 일반과세자는 매출액에 부가세율 10%를 곱해 부가세를 내야 하지만 간이과세자는 매출액에 부가세율(10%)을 곱한 뒤 거기에 다시 업종별 부가가치율(5~30%)을 추가로 곱해 납부세액을 정해 세금을 덜 내는 구조다. 특히 연간 매출이 3000만 원 미만일 경우에는 부가세 납부를 아예 면제 받도록 되어 있다. 부가세는 상품·용역 소비자들이 이미 낸 세금을 사업자가 대납하는 형태인 만큼 세금 일부를 미리 돌려주거나 면제해주는 셈이다.
정부는 이미 코로나19 사태로 큰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을 지원한다며 올해 한시적으로 간이과세 기준을 8000만 원으로, 납부의무 면제 기준을 4800만 원으로 각각 올린 상태다. 이번에 세법을 고치면 올해 일시적으로 줬던 것과 비슷한 방향의 세부담 감면 혜택을 상시화하는 걸 의미한다. 이번 부가세 간이과세 개편안은 이달 말께 발표될 세법개정안에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세제 개편 열쇠를 쥔 기획재정부에서 4800만 원이던 간이과세 기준 상한선을 6000만~8000만 원 정도로 올리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또 3000만 원이던 부가세 납부 면제선을 4000만 원으로 올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얼개만 전해졌는데도 소상공인들은 지난 20년 간의 물가상승률이나 경제규모 변화 등을 고려해 간이과세 대상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간이과세 대상을 연매출 6000만 원으로 올리더라도 월 매출로 따지면 500만원에 불과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평균 수익률이 10% 남짓으로 일반 소상공인보다도 10%포인트 정도 더 낮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의 불만은 더 크다. 간이과세 기준이 연매출 6000만 원으로 높아져도 월 수익 기준으로 환산하면 50만 원 정도 수익을 거두는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은 이런 계산법에 따라서 최소한 2억~3억 원 정도로 간이과세 기준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간이과세 기준액을 대폭 올리자는 소상공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간이과세 기준을 2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란 논지다. 송 의원 안 외에도 간이과세 기준을 연매출 9000만~1억 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안이 여럿 나와 있다.
소상공업에 종사하는 필자의 한 지인은 "간이과세 기준을 6000만 원으로 올려도 월로 따지면 500만 원인데 임차료·재료비·직원 급여 등을 빼면 마이너스"라면서 "최소한 월 1000만원 정도로 올려야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월 매출이 500만 원인 소상공인은 이미 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지금 거론되는 간이과세 기준 완화안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요즘은 단돈 몇 백 원, 몇 천 원만 써도 카드를 긁거나 현금영수증을 발행해줘야 하는 세상이어서 매출을 숨기는 게 불가능한 마당에 소상공인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전혀 없는 방안을 내놓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란 지적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 1명만 임시직으로 써도 200만원 이상 급여를 줘야 하는 데 매출 500만 원으로는 매장 임차료, 재료비를 빼면 소상공인 자신의 임금도 건지지 못하는 수준이니 그의 말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게 간이과세 대상자가 다양하게 갈라져 있다는 점이다. 실제 소상공인들은 불만이 클 수도 있지만 기준을 무작정 완화하면 자칫 세부담 형평문제가 증폭될 수 있다. 현재 양복·양장점 등 극히 일부 업종을 뺀 제조업과 광업, 도매업, 부동산 매매업 등을 하는 사업자는 간이과세를 받지 못한다. 결국 제외 업종에 해당하는 영세 사업자는 엇비슷하게 어려운 형편이라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데 다른 쪽은 더 지원해주는 꼴이 되니 공평하지 않다는 반발이 나올 법하다. 여기에 봉급생활자처럼 유리지갑인 납세자들은 간이과세에 따른 부가세 감면을 소득세를 감면해주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어 당장이라도 불만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00년 1억5000만 원 과세특례 기준을 폐지하고 간이과세 기준을 4800만 원으로 잡으며 간이과세를 축소하는 쪽으로 세정 원칙을 세운 정부가 급작스레 방향을 선회하는 것에 따른 부작용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수익에 따르는 공평 과세라는 스스로 세운 원칙을 훼손하는 것인데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사업자가 늘어나면 과세 투명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다. 코로나19 사태 여파에 '닥치고 감면' 식으로 무리하게 간이과세를 확대하면 점차 사라지던 무자료 거래 관행이 되살아난다거나 세금 탈루를 부추길 우려가 적잖다는 지적을 새겨봐야 한다. 정부로서는 거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무자료 거래 등 탈세를 부추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게 맞는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으로 간이과세를 적용 받은 사업자는 156만 명이었다. 이는 전체 개인사업자 가운데 27.8%에 해당한다. 지난 2015년 167만 명으로 32.3%였던 비중이 5%포인트 가까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간이과세가 적용 비중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것은 부가세를 신고하는 개인사업자에 소상공인 뿐만 아니라 보험업 등에 종사하는 1인 개인사업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다. 실제 영세 상인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같은 일반적인 소상공인 가운데 간이과세를 적용 받는 인원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1인 사업자의 면세점만 높여줘 봉급 생활자에게 불공평한 과세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부가세 간이과세 상한을 올리는 것은 세금 부담을 더는 자영업자를 늘리는 것과 같은 의미인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의 효과를 제대로 보겠다는 의지가 정말로 강하다면 실효를 거두지 못할 정도로 기준을 찔끔 올리기 보다는 차라리 확실하게 효과를 낼 만큼 대폭 완화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대신 간이과세를 확대하기 이전에 간이과세 업종 제한도 더 풀어 공평 과세 기반을 강화하고, 무자료 거래 등 탈세 요인을 줄일 방안을 강구한 뒤에 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간이과세 기준액을 6000만~80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면 세수는 연간 4000억~7000억 원 줄어든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추산이다. 어차피 간이과세를 확대하면 적잖이 세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마당에 공평과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지금 나오는 안처럼 어정쩡하게 기준을 완화했다가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박수도 받지 못하고 세수는 세수대로 감소하는 패착을 둘 가능성이 크다는 걸 세정 당국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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