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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코로나위기 기업지원 주도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입력 2020-07-07 17:06  | 수정 2020-07-07 19:32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대담 = 노영우 금융부장
"1975년부터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묘하게 우리 경제 10년 위기설에 집착하게 됐다."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71)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사무관 때부터 느꼈던 위기설을 꺼냈다.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 10년 후 외채위기에 이어 1990년대 후반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닥쳤다. 다음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그는 "2018~2019년에 별다른 위기가 없어 이제야 징크스가 깨지는가 했더니 결국 위기 중 가장 큰 코로나19 위기가 닥쳤다"고 말했다. 평소엔 사람들이 뭐하는 기관인지도 모르다가 위기가 닥치면 신용보증기금은 가장 바쁘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기관으로 탈바꿈한다. 특히 이번엔 코로나19로 가장 큰 고생을 했던 대구 한복판에 머물면서 주변 사람들과 기업이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현장에서 지원 업무를 담당하며 많은 것을 느꼈다. 윤 이사장은 "코로나19 기간 내내 대구에 머물면서 기업들을 도왔다"며 "주변에서는 서울로 올라가라고 권유했지만 고생하는 직원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나는 이 자리를 떠날 것이지만 함께 열심히 일했던 직원들은 남는다"며 "열심히 일한 그들에게 칭찬은 못할망정 책임을 묻는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경우 사후적으로 다소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조항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모님 상을 치르고도 외부에 알리지 않아 직원들과 지인을 당황시키기도 한 소탈한 모습도 직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첫 직장이 서울은행이었는데.
▷대학 다닐 땐 고시의 '고'자도 관심 없었다. 공부보다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다.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이 서울은행이었고 거기서 기업 신용을 조사하는 신용조사과에서 일했다. 신보와 인연이 그때 시작된 것 같다.
―고시를 보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숙원을 풀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장원급제하고 군수 되는 것'을 그렇게 부러워하시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그나마 효도라도 하기 위해 고시책을 잡게 된 게 공무원이 된 계기가 됐다. 공무원 생활 40여 년을 돌고 돌아 사회생활 출발점이었던 기업 업무로 다시 돌아온 것을 보니 인생이 참 묘한 것 같다.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
▷신보 이사장에 응모할 때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려고 서울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에 요청했더니 처음에는 없다고 하다가 나중에야 찾았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래서 서울은행 경력증명서를 겨우 제출할 수 있었다. 공무원 생활을 할 때는 어느 날 사무관이 찾아와 저도 서울은행 출신인데 선배님을 만나뵙게 돼서 영광이라고 했다.
―경제위기를 어떻게 막아야 할까.
▷선제적인 정책이 중요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와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위기의 시작과 끝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나라도 애를 먹고 있을 정도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마땅한 대책이나 수단이 없다. 가장 쉽게 작동할 수 있는 정책금융기관들이 그만큼의 역할을 해야 한다.
―위기 때마다 주목받는 이유는.
▷보증이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효과 때문이다. 1조원의 재정을 신보에 투입할 경우 10배의 운용배수를 통해 10조원의 자금을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이를 보증의 승수효과라고 하는데, 최소한의 재정 투입으로 유동성 공급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또 신보는 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심사 역량을 갖고 있다. 업종과 지역, 기업 규모 등 다양한 지원 대상의 특성에 맞는 맞춤 지원이 가능하다.
―코로나19에 대응한 신보의 역할은.
▷대표적인 것으로 유동화회사보증(P-CBO)과 기업어음(CP) 차환 지원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원활한 회사채 발행과 단기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P-CBO는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에 신용을 보강한 뒤 자금시장에 유통시키는 방법이다. 이미 P-CBO를 통해 2조1315억원의 자금이 집행돼 경기 위축으로 어려워진 기업들에 단비가 되고 있다.
―대기업 지원도 늘어난 것 같다.
▷상반기에 영화관, 소비재 제조업, 도소매업 등을 하는 대기업에 3050억원의 P-CBO를 공급했다. 회사채 신속인수 프로그램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에 120억원 정도가 지원됐다. 신보의 중심 역할이 중소기업 지원 정책금융기관이지만, 대기업이 잘 돌아가야 중소기업도 생존이 가능하다. 또 대기업에 대해서는 고용총량유지약정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고용을 줄이지 말라는 얘기다. 약정 이행 결과에 따라 금리 할인 등을 주기 때문에 기업들 반응이 나쁘지 않다.
―직원들 부담이 클 것 같은데.
▷과거 공직생활을 돌이켜보면 두 번의 경제위기를 거치며 신보의 역할이 커지고 존재감도 드러났다. 일선 현장을 다니면서 직원들에게 위기 때 빛나는 정책금융기관 역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신보의 위상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코로나19와 관련된 업무에 대해서는 면책조항을 둬야 한다는 점이다. 몇 년 뒤면 대통령도 떠나고 장관도 떠나고 이사장도 떠난다. 일은 이들이 시켰는데 나중에 문제가 되면 책임을 지는 것은 남아 있는 직원들이다. 고의 과실이 아니라면 일정 정도의 면책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로부터 면책 관련 지침을 받아 운용하기 시작했다.
대구서 겪은 코로나 경제위기…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컸다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이 본점이 있는 대구에서 시작됐는데.
▷처음에는 정말 아찔했다. 처리해야 할 보증 업무가 산더미 같은데 직원들이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특히 내가 연령으로 보면 고위험군에 들어가기 때문에 임원들은 서울의 스마트오피스에서 일하면서 영상회의를 하라고 권유했다. 대구에 함께 사는 아내도 서울로 가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직원들을 그대로 두고 대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고생을 해도 같이 하자는 생각에 31번 확진자가 발생하던 날 비상경제상황실과 재난대책본부를 즉시 가동시키고 비상경영체계로 전환했다. 선제적 예방조치 덕분에 아직까지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온 점은 다행이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도 전국 영업현장을 챙겼다.
▷영상회의가 큰 도움이 됐다. 본부 대책회의와 영업현장 점검회의 등을 모두 영상회의로 진행했다. 요즘은 시스템이 좋아져서 대면회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대구·경북지역 영업조직 현장은 직접 방문해서 챙겼다. 우리가 집행한 정책금융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와 공연기획업체 등도 찾았다. 이들의 피해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건의사항 등은 제도에 반영했다. 현장에서 직접 체감하는 중소기업의 위기는 언론매체나 보고서로 접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피해기업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들이 '골든아워'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혁신금융이 큰 역할을 했다고.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구축한 비대면 플랫폼이다. 대면 접촉을 최소화해 고객과 직원들의 안전을 보호하면서도 신속한 보증지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코로나19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3~4월에도 신보 영업점에서는 고객 줄서기 등과 같은 혼잡한 모습이 없었다. 보증 신청과 자료 제출, 전자서명 등을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다. 현재까지 8만건가량을 비대면으로 처리해 효율성을 높였다. 과거 방식만 답보해서는 신보의 지속 성장은 물론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변화를 추구하고 이를 주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형 페이덱스가 화제다.
▷상거래 데이터를 가공해 기업들에 제공하는 미국의 페이덱스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신보가 지난달 출시한 상거래 신용지수 연계 보증 상품은 기존의 재무제표로는 평가등급이 낮아 보증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업들을 위한 것이다. 신용등급은 좋지 않더라도 상거래 신용도가 우수한 기업들에 보증을 해주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약 8만개 중소기업에 기업금융을 지원하는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보가 축적한 상거래 신용지수를 은행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계획이다.
▶▶ He is…
△1949년 인천 출생 △1973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73년 서울은행 입행 △1975년 행정고시 17회 합격 △2001년 재정경제부 공보관 △2004년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2006년 청와대 경제수석 △2007년 국무조정실장 △2018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정리 = 이승훈 기자 / 한상헌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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