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르포] `청년경찰` 속 대림동은 위험한 동네? 직접 가 보니…
입력 2020-06-29 15:34  | 수정 2020-06-30 15:37
25일 대림중앙시장을 찾은 주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 = 김지원 인턴기자]

지난 25일 오후 서울 대림중앙시장. 코로나 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지만 시장은 활기 찬 모습이었다. 시장은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외침과 채소와 생선이 얼마냐고 묻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색 달걀과 중국식 무침 요리, 개고기 수육 같은 한국 재래시장에서 흔히 보기 힘든 음식이 눈에 띄었다. 슈퍼에서는 중국식 향신료와 식자재도 팔았다. 하지만 파는 음식에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 빼고는, 여느 시장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대림중앙시장이 있는 대림동은 중국 동포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이다. 중국 동포들은 애초 주거비가 저렴하고 구로공단 등 일자리와도 가까운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지냈지만 이후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자 하나둘 인근의 대림동으로 이동했다. 이후 중국 음식점와 환전소 등이 들어서며 대림동은 중국 동포들의 생활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대림동의 외국인 비율은 50.4%에 달한다.
최근 법원은 조선족과 대림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화 '청년경찰'에게 사과 권고를 내리고 재발 방지를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 동포들과 대림동 주민 60여 명이 '청년경찰'이 중국 동포와 특정 지역을 혐오적으로 그려내 편견을 형성했다며 영화 제작사 무비락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결과다.

'청년경찰'은 경찰대생 기준(박서준 분)과 희열(강하늘 분)이 한 여성이 납치되는 것을 목격한 후 직접 수사에 나서는 내용의 액션 영화다. 영화에서 중국 동포들은 여성을 납치하고 난자를 적출해 매매하는 등 범죄를 저지른다. 이 영화는 관객수 56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대림중앙시장과 차이나타운 일대는 '청년경찰'의 배경이 됐다.
"이 동네 조선족들만 사는데, 밤에 칼부림도 많이 나요. 여권 없는 범죄자들도 많아서 경찰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해서는 길거리 다니지 마세요."
기준과 희열이 납치된 여성을 구하기 위해 대림동을 향하자 택시기사는 이렇게 충고한다.
영화에서는 대림동이 마치 범죄의 온상처럼 묘사됐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이들이 말하는 대림동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죠." 대림중앙시장에서 10년 동안 채소가게를 운영해 온 채 모씨(60)는 대림동도 여느 동네와 다름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시장 내 화장품 가게 직원으로 일하는 이 모씨(25)도 "대림동에 대한 편견이 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8년간 대림동에 산 주민이다. 그는 "대림동이 그렇게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큰 범죄가 잦은 곳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내 가게 안쪽에 있던 주인이 나왔다. 14년째 이 매장을 운영 중인 김연아 씨(50)는 "얼마 전에 코로나 관련해서 대림동을 안 좋게 묘사한 기사를 봐서, 혹시 거기서 또 왔나 해서 나와 봤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김씨는 '청년경찰'을 언급하며 "그런 영화를 보면 걱정된다. 여기(대림동)가 배경이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대림동에 산다고 하면 '거기 위험한 동네 아냐?'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털어놨다.
김씨가 14년간 대림동에서 생활하며 만난 중국 동포들은 난데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이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미디어에서 대림동을, 중국 동포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대림동 내 외국인의 범죄 비율은 내국인에 비해 높지 않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외국인 밀집지역 관련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8년 7월부터 지난 2019년 6월까지 이 지역에서 발생한 5대 범죄 총 1225건 가운데 외국인 용의자에 의한 범죄는 197건이다. 자료에서 범인이 외국인으로 특정 되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내국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림동내 외국인 비율이 절반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 범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셈이다.
20년간 만물상을 운영해 온 윤 모씨(52)는 "영화니까 허구가 있을 수는 있지만 사과해야 할 부분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동포를 배척하는 게 답이 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동포 사회는 이번 판결을 반기는 분위기다. 애초에 소송도 금전적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목표했던 바를 이뤘다는 것이다.
소송을 이끌어간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연합총회 명예회장은 "이전에도 '신세계' 등 중국 동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는 있었다. 다만 이전에는 중국 동포가 고용인-피고용인 관계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개인 정도로만 등장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마치 동포 전체가 범죄자인 것처럼 그려졌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경찰은 대림동이라는 동포사회에서 대표적인 지역을 범죄자소굴로 묘사했다"며 소송을 진행한 이유를 밝혔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청년경찰'을 치면 '청년경찰 실화'가 상단에 검색어로 뜬다. 김 회장은 영화 속 '난자적출' 등의 사건에 대해 "잔인무도한 범죄고, 이런 일은 동포사회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끝으로 김 회장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 알고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 않나"며 "이 판결로 미디어에서 중국 동포를 묘사할 때 한 번쯤 고민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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