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日 코로나 사망 1000명 만든 `37.5도의 비밀`
입력 2020-06-29 13:23  | 수정 2020-07-06 14:07

'1024만3858명 감염·50만4410명 사망'(전세계)
'1만8390명 감염·971명 사망'(일본)
지난 28일 마침내 전세계 코로나19 감염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현 세대가 경험한 최악의 바이러스는 일명 돼지독감으로 불리는 신종플루(신종인플루엔자)였다.
그런데 지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파력과 고령 중증환자의 사망수준에서 신종플루의 공포를 압도하고 있다.
세계 언론들이 미국, 브라질, 인도 등 감염 대폭발이 이어지고 있는 국가들을 집중 조명하는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사망 통계에서 놀라운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주요 7개국(G7) 멤버이자 아시아 최고 선진국으로 평가 받는 일본의 치명률이 29일 현재 현재 5.3%로 전세계 치명률(4.9%)보다도 높다는 사실이다.
이는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국가로 꼽히는 한국(2.2%)이나 대만(1.6%), 말레이시아(1.4%) 등 아시아 주변국 대비로도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풀어 말하면, 지난 6개월 간 한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국민 100명 중 2명이 사망했다면 일본에서는 5명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대체 선진국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는 고사하고 전세계 치명률 평균치보다도 높은 사망자 비율을 갖게 된 것일까.
일본의 방역 실태에 대한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결론은 '정부의 실패'다.
작년 12월 우한폐렴이 발발한 뒤 3월까지 아베 신조 정권은 코로나19 방역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의심환자는 모조리 검진을 실시하는 한국, 대만 등 다른 아시아 선진국과 달리 △37.5도 이상 발열 상태 4일 이상 지속 △강한 권태감과 호흡곤란 증상인 경우에만 상담을 거쳐 보건소 등에서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는 의심환자가 아니더라도 의사 소견에 따른 의심환자로 분류되면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던 한국과 비교해 극히 소극적인 행보였다.
당시 아베 총리의 눈앞에는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일부터 7월 도쿄올림픽 개최 등 초대형 외교·스포츠 이벤트가 대기하고 있었다.
자신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국민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두 행사를 앞두고 일본 내 코로나19 감염환자가 쏟아지는 상황을 노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행사 모두 글로벌 팬데믹으로 인해 모두 취소된 뒤 아베 총리는 뒤늦게 국가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코로나19 방역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소극적 진단검사 정책이 낳은 후폭풍은 상당했다. 앞에서 언급한 감염환자 대비 비정상적으로 높은 사망률(치명률)이 나타난 것이다.
일단 방역당국인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는 전세계 치명률을 웃도는 일본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7일 아베 총리가 국가 긴급사태를 선포한 뒤 5월 말까지 쏟아져 나온 일본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소극적 진단검사는 코로나19 대응에 취약한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 어르신들의 희생을 낳았다.
청년들보다 우선해 선제적으로 감염 여부를 테스트받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이 △37.5도 이상 발열 상태 4일 이상 지속 △강한 권태감과 호흡곤란 증상사례라는 조건에 맞아야 겨우 진단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들이 이런 기준을 충족할 정도로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각 인공호흡기 또는 인공심폐기 에크모(ECMO) 치료를 받아야 할만큼 즉각적으로 상태가 위중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도교 경찰청이 지난 3월 중순부터 4월 22일까지 사인이 불분명한 사망자들을 상대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했는데 15명이 감염자로 판명됐다. 도쿄도에서 9명, 사이타마·효고현에서 각각 2명, 가나가와·미에현에서 각각 1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자택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돼 병원에 이송됐으나 사망한 어르신 사례로 노상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노상 변사자의 경우 4월 9일 새벽 도쿄 길거리에 쓰러진 60대 노인이었다. 당시 이 남성은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가 이튿날 바로 숨졌는데 사후 검사를 해 보니 감염이 확인된 것이다. 이 60대 노인이 만약 정부의 적극적인 진단 정책으로 제때 테스트를 받고 선제 치료에 돌입했다면 생존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도쿄신문이 보도한 사이타마현의 83세 노인 사망 사례도 황당하기 그지 없다.
이 노인은 4월 초부터 발열·기침·미각 장애 등을 겪었지만 보건 당국이 허용하지 않아 진단 검사를 받지 못하고 집에 머물다 증상이 악화됐다. 뒤늦게 국립병원에 응급 이송되고 코로나19 양성으로 판명됐지만 병원 측에서 자택 요양을 지시해 결국 집에서 머물다 숨졌다.
일본 게이오대학병원의 조사에서도 느슨한 정부 검사 시스템의 폐해가 감지됐다.
이 대학병원이 코로나19 이 외의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67명을 상대로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한 결과 6%에 해당하는 4명이 양성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를 두고 게이오대는 소극적인 진단 테스트로는 확인되지 못하는 지역사회 감염 상황이 현실화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 4월 도쿠다 야스하루 무리부시 오키나와임상연구센터장도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이 같은 맥락으로 일본 정부가 발표하는 감염자 통계보다 12배 더 많은 감염사례가 일본 전역에 퍼져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세계 치명률보다 높은 일본의 치명률 상황에 대해 후생노동성은 침묵하고 있지만 지난 수 개월간 일본에서 발생한 노상 변사자 사건 보도, 의료기관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느슨한 국가 진단검사 시스템이 일본 내 고령의 중증환자들을 사망으로 내몰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은 국민 4명 중 1명이 노인으로 분류되는 초고령사회 국가다.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28.4%에 달한다.
이런 슈퍼고령국가에서 '37.5도의 고열이 4일 이상' 나타날 때 진단검사를 받도록 기준을 설정한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치명성과 일본의 인구학적 특성 모두를 간과한 아베 정부의 심각한 정책 실기에 해당한다.
아베 정부는 뒤늦게 지난 5월에 접어들어서야 '37.5도 이상 발열·4일 이상 지속' 기준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37.5도에 얽매이지 않고 당사자가 고열이라고 판단하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정책 실패를 깨닫고 다시 정책을 수정한 대가는 실로 참담해 보인다.
세계 치명률은 웃도는 것은 물론 한국의 두 배가 넘는 5.3%의 치명률을 기록하며 1000명에 이르는 국민이 목숨을 잃는 재난적 상황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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