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너무 단순하고 과격한 접근
입력 2020-06-29 09:27  | 수정 2020-07-06 09:37

난마처럼 얽혀있는 경제문제를 문재인 정부들어서 '단칼에 무 자르듯' 해결하려고 시도한 사례가 몇차례 있다.
저소득계층 소득을 올리겠다는 명분으로 최저임금을 2년동안 무려 30%가량 인상했다. 그 결과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문을 닫았고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지난해 8월에는 대학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강사법 시행을 강행했다. 그결과 국내 대학강사 30%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 법은 대학 시간강사에게 방학때에도 임금을 주고 4대 보험 가입과 퇴직금 지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인건비가 늘어나면 대학들이 시간강사를 대거 해고할 것"이라는 걱정 탓에 7년동안 시행을 유예해온 법인데 현정부는 거침이 없었다. 국내 대학 강사수는 2019년 2학기에 3만5500여명으로 1년사이 1만5000명이상 급감했다. 누군가가 웃는 사이 누군가는 벼랑끝으로 떨어졌다. 따뜻한 의도였지만 결과는 비정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대우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다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말 한마디로 '단칼에 무 자르듯'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였다면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왜 해결하지 못했겠는가.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노조설립 부문과 중소기업·비정규직·노조 미설립 부문으로 양극화돼 있다. 앞 그룹의 평균 근속연수는 13.7년인 반면 뒷그룹의 평균 근속연수는 2.3년에 불과하다. 월평균 임금도 앞그룹은 424만원에 이르는 반면 뒷그룹은 152만원에 불과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사이에 이런 임금격차와 고용안정성 격차를 줄여가는 노력부터 필요하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과 관련해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공정하냐"고 반문했다. 맞는 말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평균 연봉은 9100만원인 반면 비정규직은 385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처리하는 일의 전문성·난이도에 따른 임금격차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이런 임금격차가 생긴다면 그건 공정하지 않다.
현재 공기업·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우리나라 경제수준에 비해 과도한 편이다. 한국 대기업의 대졸 정규직 신입사원 임금은 일본에 비해 30% 가량 높다. 기업이 줄 수 있는 인건비에는 한계가 있다. 무작정 퍼주면 망한다.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려면 정규직 양보는 반드시 거쳐야할 절차다.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우선 임금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이 높은 임금을 받는 기존의 '연공서열형 호봉제'는 공정·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고 얼마나 성과를 냈느냐에 따라 임금을 차별화하는 '직무급제'가 정상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성과를 냈을 때에는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정상이다.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바꾸려는 노력은 2000년대 초부터 추진돼 왔지만 노동계 기득권층의 반발로 지지부진하다. 문재인 정부들어서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다그치는 소리는 요란한데 '공기업 직무급제'를 도입한다는 소리는 들릴듯 말듯하다. 비정규직 제로정책을 지금처럼 추진하면 '공기업 철밥통'이 갈수록 늘어나 국민 부담만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걱정이 쌓이는 까닭이다.
"공기업 정규직이라 해도 앞으로는 입사년도에 따라 일률적으로 똑같은 월급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맡은 일에 따라 임금이 차등화될 것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맡은 일이 다르면 기존 정규직과는 차등화된 임금을 받게될 것이다" 이와같은 공기업 직무급제 도입방향을 뚜렷하게 설명하고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 그랬더라면 "이번에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가만히 앉아 연봉 5000만원 받게 됐다"는 식의 잘못된 말이 여론을 흔들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 '단칼에 무자르듯' 하려다 보니 웃는 사람과 우는 사람사이에 희비가 더 크게 엇갈린다.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는 일도 우선 '직무급 임금체계'로 개편하고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정규직 채용절차를 정하고 나서 차근차근 진행해야할 일이다.
[최경선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