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이재용 공방 3라운드로…'수사심의위' 설득 주력
입력 2020-06-12 17:32  | 수정 2020-06-19 18:05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 과정을 둘러싼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52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병처리와 기소 여부를 놓고 다퉈온 검찰과 삼성 측이 세 번째 공방에 돌입했습니다.

양측은 지난 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과 어제(11일)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위한 서울중앙지검 부의심의위원회에서 두 차례 맞붙었습니다.

일단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과 수사심의위 소집 결정으로 삼성 측이 모두 판정승을 거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검찰 외부전문가들에게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수사심의위의 승패는 양측 모두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날 부의심의위의 회부 결정에 따라 의결서와 수사심의위 소집요청서 공문을 오늘(12일) 오전 대검에 발송했습니다. 이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곧바로 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했습니다.

부의심의위는 위원장을 제외한 15명의 출석위원 가운데 9(찬성) 대 6(반대)으로 이 부회장 사건을 수사심의위에 넘기는 안건을 의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부의심의위 의결은 출석 위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합니다.


◇ 이르면 이달 말 심의기일…의견서 및 의견진술 절차 진행

과거 사례로 보면 수사심의위는 소집 결정 후 2~4주 내 열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윤 총장이 이날 수사심의위 소집을 정식으로 요청함에 따라 이르면 이달 말로 심의기일이 정해져 당일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사심의위는 이 사건을 살필 현안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는데, 부의심의위 절차와 마찬가지로 양측이 심의기일에 A4 용지 30쪽 이내의 의견서를 제출하고 위원들이 이를 검토합니다.

부의심의위와 달리 현안위 단계에서는 신청인 측 이외에 고소인과 기관고발인, 피해자, 피의자 및 그들의 대리인과 변호인 등 사건관계인도 의견서를 낼 수 있어 현안위원들이 검토할 내용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의 운명을 좌우할 15명의 현안위원을 대상으로 기소의 타당성 여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안위원은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이 있는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선정된 위원 150~250명 가운데 추첨을 통해 선정됩니다.

현안위에서는 양측이 낸 의견서를 토대로만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하는 부의심의위와 달리 '의견진술' 절차도 진행됩니다. 양측은 30분 안에 사건에 관해 설명하거나 의견을 밝힐 수 있습니다.

검찰과 신청인 측 이외에 사건관계인이 현안위에서 별도로 의견 진술을 원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안위원은 심의기일에 양측 의견서를 검토한 뒤 궁금한 부분은 출석한 주임검사나 신청인 측에 질문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개별 혐의를 두고도 치열한 토론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됩니다.

검찰 측에서는 주임검사인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 신청인 측에서는 '특수통' 변호사들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쟁점은 이 부회장 등을 기소하는 게 옳은지, 검찰이 계속 수사를 하는 게 적정한지 입니다.

한편, 대법관 시절 '애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을 맡은 68살 양창수(사법연수원 6기) 수사심의위원장이 이번 사건을 판단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양 위원장은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다수의견을 냈습니다. 당시 사건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도 관련이 있다는 점 때문에 공정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검찰과 신청인 측은 위원장이나 위원 기피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일단 수사심의위 일정 등이 미정인 상태에서 언급할 부분이 아니라며 신중한 입장입니다. 양 위원장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임시 위원장이 업무를 맡습니다.


◇ "불구속기소 마땅" vs "무혐의 불기소 해야"

검찰은 수사심의위 절차를 지켜보며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수사심의위 권고를 참고하되,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반대로 삼성 측은 시세조종과 회계사기 등 혐의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보고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라 무혐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사심의위에서도 이 부분을 소명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전망입니다.

수사심의위에서는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서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 부분이 부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검찰은 법원이 '기본적 사실관계가 소명됐다'고 말한 건 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이 부회장의 혐의를 사실상 인정했다는 입장이지만, 삼성 측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관련 객관적인 사실관계만 인정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기록이 방대하고 내용도 복잡한 사건을 법률 전문가가 아닌 각계 전문가들이 양측 의견서와 진술만으로 당일에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일종의 여론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지청장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400권 20만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보지 않고 외부인들이 유무죄 및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일반 시민의 상식으로 판단해야 할 사건이 있고 전문가가 깊이 있게 판단해야 할 사건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찰 안팎에서는 삼성 사건은 수사 초기부터 이른바 '윤석열 사건'으로 불렸던 만큼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결정하더라도 검찰이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다만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외부 전문가를 통해 평가받기 위해 검찰 스스로 도입한 수사심의위 제도 취지가 있는 만큼 수사심의위 권고에 반하는 처분을 내리는 데는 부담이 따릅니다.

검찰은 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열린 8차례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모두 따랐습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이 기소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수사심의위에서 일부 혐의라도 불기소 의견을 받아내 향후 재판에서 검찰 구형을 최소화하기 위한 삼성 측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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