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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2년 차 ‘우승 징크스’ 이성우, LG 복덩이가 따로 없네
입력 2020-06-12 06:39  | 수정 2020-06-12 09:02
2000년 LG트윈스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이성우는 SK-KIA, 다시 SK를 거쳐 LG로 돌아왔다. 불혹에 이성우의 타격이 만개하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서울 잠실) 안준철 기자
정말 감정이 벅차오르네요. 나이 마흔에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이성우(39)는 LG트윈스의 복덩이가 틀림없었다.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홈런을 때린 이성우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KBO리그 SK와이번스 6차전(더블헤더 2차전)에 8번 포수로 출전한 이성우는 3-3 동점이던 7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SK 투수 정영일의 5구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좌측 담장을 살짝 넘기는 결승 솔로아치를 그렸다. LG의 4-3 승리, LG는 이날 열린 더블헤더를 모두 가져갔다.
이성우에게는 뜻깊은 홈런이었다. 2000년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한 지 이제 21년째, 이성우의 첫 결승 홈런포였기 때문이다.
이제 은퇴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지만, 이성우는 색다른 경험들을 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프로 생활을 시작한 LG에서다. 지난 시즌에는 프로 첫 끝내기 안타의 짜릿함을 맛보더니, 지난달 27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만루홈런을 때렸다. 프로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맛본 그랜드슬램이었다. 당시 이성우는 홈런인 줄 모르고 2루까지 전력 질주를 했고, 홈런 사인에 어리둥절하며 그라운드를 돌아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날 홈런도 마찬가지였다. SK 좌익수 최지훈이 점프 캐치를 시도했는데, 담장을 넘어간 타구가 외야 관중석을 맞고 다시 그라운드로 들어왔다. 이성우는 2루에서 멈칫하다가 속도를 내서 3루를 밟았고, 심판이 손을 돌리자(홈런 사인),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이성우는 사실 제가 달리기가 느려서 1군에서 3루타가 없다. 홈런타자도 아니고, 포인트가 앞에서 맞긴 했지만, 내 느낌에는 정타가 아니였고, 타구도 안으로 들어와 있어 3루까지 열심히 뛰었다. 그만 둘 때 두더라도 기록은 다 가지고 싶었는데, 어쨌든 첫 결승 홈런을 때렸다”며 감격에 젖은 소감을 전했다.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이성우는 이게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자꾸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서 감정이 올라온다”면서도 내일 동료들에게 피자를 쏘겠다”고 껄껄 웃었다.

LG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지만, LG 유니폼을 입고 잠실 그라운드를 누빈 건 지난 시즌이 처음이었다. 2군에 머물다가 방출 통보를 받았고,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2006년 SK 유니폼을 입었지만, 여전히 2군에 머물렀다. 1군 데뷔는 결국 트레이드로 KIA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2008년에 이뤄졌다. 꿈만 같던 9시즌 만의 1군 입성이었다.
그렇게 이성우는 가늘고 길게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였다. 주전 포수였던 적은 없다. 백업 역할을 묵묵히 해왔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기분 좋은 징크스도 있다. 바로 이적 2년 차에 이성우의 소속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SK 유니폼을 입은 지 2년째였던 2007년 SK는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역시 KIA로 옮긴 지 2년째였던 2009년 KIA가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7년 SK로 다시 돌아와 그 다음해인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했다.
이성우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부담스럽다. 하지만 LG에서도 이를 이어가고 싶다”며 올 시즌 LG 창단 30주년 아니냐. 그리고 우리 (박)용택이 형 우승 반지를 끼는 걸 보고 싶다. 나도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는데, 반지 하나 더 가져가고 싶다”고 덤덤히 말했다.
특히 2년 선배인 박용택은 불혹(不惑)에 이성우의 타격이 만개할 수 있게 해 준 조력자이기도 하다. 이성우는 지난 시즌 말부터 용택이 형이 하체를 쓰는 법을 알려줬다. 사실 저는 타격코치님들도 포기한 선수라 타격은 독학으로 해왔다. 근데 용택이 형이 알려준 대로 하니, 타이밍도 잘 맞고, 타구에 힘이 붙더라. 오늘도 홈런을 치고 오니까 용택이 형이 ‘거 봐, 내가 하라는 대로 하니까 되잖아라고 하더라. 5년만 자기를 빨리 만났으면 주전 포수 시켜줬을 거라는 농담도 한다”며 껄껄 웃었다.
11일 잠실에서 열린 SK와의 더블헤더 2차전 결승홈런을 때린 이성우. 이성우는 선수 생활 끝자락에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 사진(서울 잠실)=안준철 기자
다만 이성우는 짜릿한 홈런에도 이날 선발로 등판한 임찬규에게 미안한 마음을 나타냈다. 이성우는 경기는 1주일에 한 번 나가니까 부담스럽다. 내가 나갔을 때 팀이 승리해야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연구도 많이 하고, 선발투수랑 얘기도 많이 한다. 오늘 (임)찬규한테 미안한 게 1회부터 사인이 잘 안 나왔다. 투수는 포수들이 템포를 빨리 해 줘야 하는데, 제가 계속 막히는 경우 있어서 찬규한테 미안하다”며 내 역할은 백업포수다. 수비에 욕심이 더 많다. 타격이 계속 잘 되는 게 좋지만, 또 한편으로 수비에 대한 부담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다시 돌아온 이성우는 LG의 복덩이가 분명했다. 2018년 SK 우승에 힘을 보탰지만, 팀은 이성우에 은퇴를 제안했고, 이를 거절한 이성우는 다시 LG로 돌아왔다. 운명적인 복귀였다. LG-SK-KIA-SK-LG 순으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는 이성우다. 이성우는 LG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아마 은퇴는 LG에서 할 것 같다. 다시 기회를 준 LG트윈스에 너무 감사하다. 올해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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