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6월 11일 스포츠, 어떤 일 있었나? [OTD]
입력 2020-06-12 06:26 
2013년 이날, 역사에 남을 난투극이 벌어졌다. 사진= MK스포츠 DB
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알링턴) 김재호 특파원
6월 11일, 스포츠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날 스포츠계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 2017년
스탠리컵 결승 6차전에서 피츠버그 펭귄스가 내슈빌 프리대터스를 2-0으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2연속 우승을 확정했다.
▲ 2017년
워싱턴 내셔널스의 맥스 슈어저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경기에서 7 1/3이닝동안 10개의 탈삼진을 잡으며 통산 2000탈삼진을 달성했다.
▲ 2017년
'클레이코트의 황제' 라파엘 나달이 롤랑가로스 남자 단식 결승에서 스탄 바브린카를 3-0으로 이기고 이 대회 최초로 10회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그는 2012, 2006년에도 6월 11일에 이 대회 결승 무대에 섰고 각각 노박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를 이기고 우승컵을 안았다.
▲ 2013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LA다저스가 역사에 남을 난투극을 벌였다. 6회말 애리조나 선발 이안 케네디가 다저스 타자 야시엘 푸이그의 머리를 맞히면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7회초 다저스 선발 잭 그레인키가 첫 타자 미겔 몬테로의 등을 맞히면서 한 차례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쌓였던 감정은 7회말 폭발했다. 케네디가 타석에 들어선 그레인키의 머리를 맞히면서 다시 한 번 양 팀 선수들이 몰려나왔고, 이번에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케네디가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것을 비롯해 총 8명이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 2012년
스탠리컵 결승 6차전에서 LA킹스가 뉴저지 데빌스를 6-1로 이기고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첫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했다.
▲ 2010년
뉴욕 양키스의 앤디 페티트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며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위티 포드, 레드 러핑에 이어 세 번째로 양키스에서만 200승을 달성한 투수가 됐다.
▲ 2006년
LPGA 챔피언십에서 박세리가 연장전 끝에 캐리 웹을 누르고 이 대회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 우승은 다섯 번째. 김미현이 공동 3위, 안시현과 미쉘 위가 공동 5위, 김영, 임성아가 공동 9위에 올랐다.

▲ 2003년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로이 오스왈트, 피터 문로, 커크 살루스, 브래드 리지, 오타비노 도텔, 빌리 와그너를 앞세워 뉴욕 양키스에 팀 노 히터를 달성했다. 양키스가 노 히터를 당한 것은 1958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호이트 윌헬름에게 당한 이후 6980경기만이었다. 휴스턴의 이번 노 히터는 역사상 최다 인원이 합작한 노 히터로 기록됐다.
▲ 2000년
롤랑가로스 남자 단식 결승에서 구스타보 쿠에르텐이 매그너스 노만을 3-1로 누르고 통산 두 번째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 1999년
뉴욕 닉스가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90-82로 꺾고 파이널 진출을 확정했다. 그들은 NBA 역사상 최초로 8번 시드로서 파이널에 진출했다.
▲ 1999년
밀워키 브루어스가 폴 몰리터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 1995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리 스미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경기에서 팀의 5-4 승리를 지키며 16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을 달성했다. 1988년 덕 존스가 세운 기록(15경기)을 경신했다.
바클리와 조던은 1993년 파이널에서 만났다. 사진=ⓒAFPBBNews = News1
▲ 1993년
시카고 불스와 피니스 선즈의 파이널 2차전에서 마이클 조던과 찰스 바클리가 나란히 42점을 올렸다. NBA 파이널에서 처음으로 양 팀 선수가 동반으로 40득점 이상을 넘긴 경기가 나왔다.
▲ 1992년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이 찬성 25표 반대 1표로 야마구치 히로시 닌텐도 사장을 앞세운 그룹이 시애틀 매리너스를 인수하는 것을 승인했다. 북미 이외 지역 출신 구단주가 메이저리그 팀을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1990년
텍사스 레인저스의 놀란 라이언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경기에서 노 히터를 기록, 통산 여섯 번째 기록을 세우며 최다 노 히터 기록을 늘렸다. 또한 43세인 그는 최고령 노 히터 기록에 세 번의 십년대에 모두 노 히터 기록까지 세웠다.
▲ 1989년
롤랑가로스 남자 단식 결승에서 마이클 창이 스테판 에드버그를 3-2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17세 110일의 나이로 우승하며 최연소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 우승 기록을 세웠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그랜드슬램 우승이었다. 창은 6년 뒤인 1995년 같은 날 다시 한 번 이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오스트리아의 토마스 무스터에게 0-3으로 무릎을 꿇었다.
▲ 1988년
뉴욕 양키스 투수 릭 로덴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경기에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1973년 지명타자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지명타자로 나선 투수가 됐다. 희생플라이 한 개를 기록한 뒤 교체됐다.
▲ 1985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외야수 본 헤예스가 메이저리그 최초로 1회 홈런 2개를 때린 타자가 됐다.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선두타자로 나서 홈런을 때린 그는 1회 다시 타격 기회가 찾아왔고 이번에는 만루홈런을 때렸다. 필라델피아가 26-7로 크게 이겼다.
▲ 1979년
롤랑가로스 남자 단식 결승에서 비욘 보르그가 빅터 페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년전 같은 날에도 같은 대회 결승에서 이겼다. 기예르모 비야스를 3-0으로 눌렀다.
▲ 1978년
LPGA 챔피언십에서 당시 21살이던 신예 낸시 로페즈가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 1974년
뉴욕 양키스의 멜 스토틀마이어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하며 272경기 연속 선발 등판으로 아메리칸리그 기록을 세웠다. 4회 프랭크 로빈슨을 상대하던 도중 어깨에 무너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중에 회전근개가 찢어진 것이 발견됐다. 그의 마지막 선발 등판이었다.
▲ 1972년
LPGA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케이시 애헌이 1오버파를 기록, 2위 제인 블라록을 6타 차이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 1959년
이날 시작된 US오픈에 찰리 시포드가 출전했다. 그는 이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흑인 선수로 기록됐다.
▲ 1955년
르망 경주 대회 도중 경주차끼리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파편이 관중석으로 튀면서 83명이 숨지고 참가지 피에르 부이용을 포함해 18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자동차 경주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끔찍한 사고가 벌어진 와중에도 경주는 계속됐다는 것. 이 사고로 메르세데스-벤츠사는 모든 자동차 경주에서 발을 뺐고, 1987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 1950년
US오픈 남자 골프 대회에서 벤 호건이 연장전 끝에 로이드 맨그럼, 조지 파지오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1949년 피닉스 오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자동차 사고를 당했던 그는 골반과 쇄골뼈,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화려하게 복귀했다.
▲ 1949년
US오픈 남자 골프 대회에서 캐리 미들코프가 2오버파를 기록, 2위 그룹을 한 타 차로 따돌리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 1938년
프랑스오픈 남녀 단식 결승에서 돈 버지(미국)와 시모네 마티유(프랑스)가 나란히 우승을 차지했다.
▲ 1927년
필라데피아 어슬레틱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경기 9회 수비 때 코크레인을 포수로 교체 투입하면서 필드 위에는 장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7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루게 됐다. 코크레인을 비롯해 타이 콥, 에디 콜린스, 지미 폭스, 레프티 그로브, 알 시몬스, 잭 위트가 그들이다. 1928년 5월 24일 뉴욕 양키스와 경기에서는 상대 선수까지 합쳐 총 13명의 미래 명예의 전당 멤버들이 한 경기에서 함께 뛰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 1909년
디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J.H. 테일러가 2위 그룹을 6타 차이로 제치고 대회 네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 1903년
디 오픈에서 형제가 우승을 놓고 다퉜다. 형 해리 바든이 동생 톰 바든에 6타 앞서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greatnemo@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