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달러 퍼가기 안 돼" 나스닥, 중국기업 상장 규제…`中 아메리칸드림` 제동
입력 2020-05-19 11:14  | 수정 2020-05-26 12:07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를 기점으로 미·중 제2차 경제전쟁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시장의 심장부'로 통하는 미국 증시가 중국 기업 옥죄기에 나섰다. 지난 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기업에 경고장을 날린 데 이어 이번 주에는 나스닥이 중국 기업 증시 상장을 규제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나스닥이 중국 기업을 겨냥해 기업공개(IPO) 기준을 까다롭게 한 새로운 IPO규제 방침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나스닥 관계자는 "이번 IPO기준 강화를 통해 일부 중국 기업은 나스닥 상장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IPO는 증시 상장을 위한 첫 걸음이다. 나스닥은 지난해부터 상장 기업 난립을 막기 위해 중소 기업 IPO를 제한해왔지만 특히 이번 규제는 중국 기업의 회계가 투명하지 않고 내부자 간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나왔다.
나스닥이 내걸 새로운 규제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 기업을 겨냥해 처음으로 'IPO를 위한 최소한 자금 확보'를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자금 확보란 중국 등 일부 외국 기업에 대해 IPO과정에서 최소 2500만 달러를 조달하거나 상장 후 시가 총액의 4분의 1이상 자금을 확보해야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조건을 2000년 이후 나스닥 상장 기업에 적용해보면, 기존에 상장한 중국 기업 155곳 중 40곳이 자격 미달에 해당한다. 그간 중국 기업들이 나스닥 IPO를 원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창업자와 금융권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면 중국 당국의 자본통제를 피해 통해 쉽게 달러를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나스닥 상장 기업이라는 점을 활용해 중국 당국으로부터 보조금·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따른다.

한편 나스닥은 상장을 원하는 중국 기업의 IPO를 위해 회계 감사 업무를 맡은 업체에 대해서도 국제 표준 준수 여부를 확인·조사할 방침이다. 이 방침은 회계 감사 업체가 미국 업체인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번 나스닥 IPO 규제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배경으로 꼽힌다. 앞서 지난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미국 증시를 노리는 중국 기업에 대해 경고장을 날린 바 있다. 당시 대통령은 코로나19 발원지 논란과 관련해 "중국에 매우 실망했다(I'm very disappointed in China)"고 하면서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기업 중 미국 회계기준을 따르지 않는 회사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부쩍 글로벌 금융시장에 진출한 중국 기업을 압박해왔다. 앞서 11일 백악관의 트럼프 대통령 참모진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유진 스캘리아 노동부 장관을 통해 "미국 연방퇴직저축투자위원회(FRTIB·연방 공무원 연금기금)는 중국 기업 주식 투자 진행 사항을 전면 중단(halt all steps)하라"는 주문을 내기도 했다. 당시 두 참모진은 "FRTIB는 중국항공공업그룹회사(AVIC)와 항저우히크비전 같은 곳에 투자하지 말라"면서 "중국 업체는 미국의 재무공개규칙을 지킬 의무도 없기 때문에 기업이 투명하지 않고 투자 리스크가 크며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경고를 낸 바 있다.
'루이싱커피 회계부정 사건'도 나스닥 IPO규제 배경이다. 미국의 거대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를 따라잡겠다고 선언한 '중국판 스타벅스' 루이상 커피는 지난 달 2일 '2019년 사업보고서'발표를 통해 2019년 2∼4분기 매출액 규모가 22억 위안(우리 돈 약 3800억원)정도 부풀려졌다면서 부정회계 사실을 공표해 투자 패닉을 일으키고 증시 거래가 중단 됐다.
지난 2017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출발한 루이싱커피는 작년 5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미국 증시에 상장한 스타트업'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관심을 잔뜩 끌어모았다. 하지만 나스닥 상장 1년도 안돼 회계부정 의혹이 제기됐고, 이를 무마해왔다가 지난 달에서야 의혹이 사실임을 인정해 세간의 비난을 샀다. 회계부정 탓에 지난 12일 루이싱커피 창업자 첸즈야 최고경영자(CEO)가 해임됐지만 투자자들이 이미 막대한 손실을 입은 후였다.
나스닥은 1971년 2월 미국 장외 주식시장으로 만들어졌다. 대형주 위주인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달리 나스닥에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미국 내외 스타트업이 상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쿠팡의 나스닥 상장설이 꾸준히 나온 바 있고, 지금은 공룡기업으로 통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구글 모회사) , 애플, 인텔 등 기술 대기업도 나스닥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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