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충당금 안쌓고 실적 선방한 금융사…지배구조 다지려는 노림수?
입력 2020-05-11 17:49  | 수정 2020-05-11 23:33
◆ 충당금 쓰나미 우려 ◆
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잔뜩 쌓은 외국 은행들은 순이익이 1년 새 반 토막 이상 났지만 충당금을 적게 쌓은 국내 금융사들 실적은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비용을 덜 반영해 실적이 선방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는 은행 최고경영자(CEO)가 각종 소송 이슈 등에 걸려 있는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지배 구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0일 매일경제신문이 국내외 금융사 기업설명회(IR) 자료와 각 사 홈페이지를 분석해보니 뱅크오브아메리카(BOA)·JP모건·웰스파고·씨티그룹 등 미국 '빅4' 은행의 올 1분기 순이익은 12조2610억원(환율 1220원 적용)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33조132억원)보다 62.9%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충당금을 4.5배나 늘리면서 순익이 급감했다. 지난해 1분기에 11조3143억원 순이익을 합작했던 유럽 '빅4' 은행은 올 1분기에는 이익을 5조4937억원밖에 내지 못했다. 같은 기간 충당금이 2.4배 증가한 10조8299억원에 달하면서 순익이 반 토막 났다. 유럽 빅4는 HSBC·BNP파리바·산탄데르·도이체방크를 뜻한다.
이에 반해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국내 금융지주 4곳은 순이익이 1년 새 2조8788억원에서 2조8371억원으로 1.4% 감소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영향이 거의 없는 셈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올 1분기 주요 금융지주사 실적을 보면 코로나19로 인한 환율 변동에 따른 기타영업손실을 제외하면 감소 요인이 별로 없었다"며 "코로나19 영향이 하반기에 반영되면 충당금을 더 많이 쌓는 구조여서 일단 리스크를 뒤로 미룬 셈"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실적을 높여 지배구조를 탄탄히 하려는 금융지주사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금융지주사는 올해 DLF 소송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중징계 등이 복잡하게 걸려 실적이 중요해졌다. 올 1분기에 IBK기업은행과 하나은행은 지난해 1분기보다 충당금을 줄이기도 했다. 국내 금융사들이 코로나19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지주사들의 실적 선방은 외국인 주주에게 희소식이다. 외국인들은 국내 금융지주사 주식을 60% 이상 보유하고 있어 매년 봄 막대한 배당금을 챙겨 가고 있다. KB·신한·하나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 8일 기준 63.6~65.4%다. 상장사 배당금은 전년도 순이익 기준으로 지급된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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