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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충당금` 美·유럽은 순익 2배 쌓는데…韓금융은 제자리
입력 2020-05-11 17:49  | 수정 2020-05-11 19:48
◆ 충당금 쓰나미 우려 ◆
우리나라 은행들이 코로나19 사태로 닥쳐올 경제적 위험을 미국·유럽 은행에 비해 상당히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우리 은행들의 사태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더불어 금융위원회 등 감독기관이 코로나19 사태로 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미래 부실 위험을 과소평가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사태가 하반기에 본격화하면 은행들 재무구조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염려가 제기된다.
11일 매일경제신문이 순이익 기준으로 한국과 미국, 유럽 '빅4' 금융사의 작년과 올해 1분기 대손충당금과 실적을 비교·분석했다. 대손충당금은 대출자들이 원금이나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회계 항목으로, 금융사 입장에서는 비용이다. 분석 결과 국내 금융지주의 위험 대비 비용(대손충당금)이 1년 새 고작 9.5%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각각 4.5배, 2.4배 늘려 한국 금융회사들과 대조를 이뤘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국내 4대 금융지주사는 올 1분기에 충당금을 총 7305억원 쌓았다. 작년 1분기(6672억원)에 비해 9.5% 늘어난 수준이다. 이들 지주사 실적 중 80.2%가 은행에서 나온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JP모건·웰스파고·씨티그룹 등 미국 은행들의 올 1분기 합산 충당금 규모는 29조1653억원(환율 1220원 적용)에 달한다. 작년 1분기(6조5063억원)보다 무려 348.3% 급증했다. 특히 JP모건은 전체 대출 대비 충당금 전입 비율을 크게 높이며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 작년 1분기 충당금 비율은 국내 금융지주사보다 낮은 0.15%였지만 올 1분기엔 0.86%로 치솟았다. 이 같은 올 1분기 JP모건의 수치는 국내 금융지주사(0.13~0.35%)보다 최대 6배나 높다.
유럽 은행들도 리스크 관리 비용을 대거 늘렸다. 영국 HSBC, 프랑스 BNP파리바, 스페인 산탄데르, 독일 도이체방크 등 유럽 각국의 최대 은행 4곳은 올 1분기에 충당금을 10조8299억원 쌓았다. 작년 1분기(4조4725억원)보다 142.1% 늘리며 코로나19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금융사들 충당금 증가율이 유독 낮은 이유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영향 차이 △서로 다른 회계기준 △국내 금융당국의 충당금 유예 조치 등 크게 3가지가 꼽힌다. 코로나19 위기로 상업시설 중단은 물론 이동제한까지 시행한 미국과 유럽에 비해 국내 파장은 덜했다는 게 금융권 판단이다.
또 미국 회계기준은 US 갭(GAAP)으로 충당금을 국내 기준(IFRS9)보다 많이 쌓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국내 지주 회계 담당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와 같은 회계기준을 쓰는 유럽 은행들은 부실 업종에 더 많은 충당금을 쌓는 식으로 주관적 요소를 강화해 충당금을 대거 쌓아 국내와 대조를 이뤘다.
금융위의 현실 인식도 글로벌 코로나19 대응과 딴판이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회계기준원은 금융지주들의 잠정 실적발표 직전인 지난달 13일 이례적으로 '금융상품 손상 규정 적용 시 유의사항'이라는 제목으로 된 보도자료를 내놨다. 핵심 내용은 대출 유예 조치에 대한 손상 규정(향후 리스크 대비한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을 유연하게 적용하라는 것이다.
해당 자료에서 당국은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불확실성 확대 속에서 기업의 손상 금액 산정을 지금까지 사용한 방법과 가정대로 계속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특정 금융 상품에 대한 대출 유예 등을 바로 신용위험 증가로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정부가 보증할 테니 대출 만기 연체나 이자에 대해 과거와 같은 잣대로 충당금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에 대응해 정부가 전례 없는 다양한 지원 조치를 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최근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발표한 IFRS9 손상 규정 안내문에 근거해 설명서를 배포한 것"이라고 답했다.
충당금을 덜 쌓고 싶어하는 은행과 코로나19 대출의 원활한 시행을 원하는 금융당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 시중은행이 소상공인·중소기업의 기존 대출·보증 만기를 연장해준 건수는 16만9000건에 달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34조9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이자 납입을 유예해준 건도 4000건(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금융권의 느슨한 위기 인식 여파가 하반기에 한꺼번에 몰려올 수 있다고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코로나19 대출 만기와 이자 상환이 6개월씩 연장된 상황이라 4분기에 일제히 만기가 닥치면 예기치 못한 부실이 은행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일호 기자 / 정주원 기자 /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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