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공개발에 등돌린 토지주들…"불확실한 행정이 복병"
입력 2020-05-07 17:13  | 수정 2020-05-07 19:23
국토교통부가 지난 6일 공공 개발(LH·SH공사 등 공기관을 통한 재개발)을 활성화해 "조합원 재산권을 보장하고 사업 추진도 더 빠르게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지난달 정비구역 해제·연장안이 통과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와 지난해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증산동 205 일대(증산4구역) 등이 공공 재개발에 참여할 잠재 사업지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정작 공공 개발의 대표 격인 세운4구역(종로구 예지동 85 일대 3만2000㎡)은 토지주가 대거 분양 권리를 포기하고 심지어 토지수용단가가 낮다며 당국에 '이의 신청'까지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잦은 실무자 교체로 인한 불확실한 행정, 그리고 낮은 사업성이라는 공공 개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이에 SH공사는 아파트 등 주거비율을 높여 사업성을 높이는 안도 검토하고 나섰다.
7일 SH공사에 따르면, 지난 2월 진행된 세운4구역 관리처분총회에서 토지주 총 410명의 약 61%(250명)가 현금청산(분양을 포기하고 현금으로 보상받는 것)을 신청했다. 현금청산자 중에는 당초 세운4구역에 본사를 지으려고 땅을 샀던 KT도 포함됐다. 이에 더해 현금청산자 대다수가 수용단가에 불만을 품고 이의 제기까지 했다.
이같이 토지주들이 많이 떠난 가장 큰 이유로는 불확실한 행정이 꼽힌다.
2004년 사업시행자로 종로구청장이 지정 고시되었으나 지주들과 협의되지 않은 사업 방식(제3섹터·신탁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겪었다. 3년여가 지나 SH공사로 사업시행자가 바뀌었으나 이 역시 문화재청 권고(높이 71.9m로 제한)에 발목이 잡혔다. 공공 참여로 사업 진행이 빨라진다는 국토부 제안이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세운4구역의 한 지주는 "민간 시행자였다면 수익을 고려해서라도 더 빠르게 사업을 진행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세입자 임시 이주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세운4구역 지주들과 갈등을 겪었다. SH공사는 세운4구역 내 세입자를 대체사업장인 세운스퀘어로 이주시키며 세입자들에게 사업 완성 시점까지 관리비만 받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구역 지주들도 사업이 금방 완성될 것으로 여겨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업이 기약 없이 지연되며 지주들 임대소득도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구역 한 지주는 "공공을 신뢰하지 못해 결국 사람들이 떠난 것"이라고 했다.
사업성이 낮은 것도 현금청산자가 늘어난 주원인이다. 세운4구역은 약 3만2000㎡에 공사비 4400억원을 들여 대규모 복합시설(오피스텔 2개동·상가 및 호텔시설 2개동·업무시설 5개동)을 조성하는 게 골자다. 그런데 오피스텔이 481가구로 전체 면적의 17.5%에 불과하다. 구역 면적이 1만㎡로 세운4구역의 3분의 1에 불과한 세운 3-1·4·5구역(힐스테이트 세운)에 988가구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에 비해 주거비율이 매우 낮다. 경기가 안 좋은 현 상황에서 주거비율이 낮다는 것은 사업성이 그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주체인 SH공사도 호텔 등 비율을 줄이고 아파트 등 주거비율을 높여 사업성을 끌어올리는 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SH공사는 "현행 계획대로 해도 사업성엔 문제가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애당초 낮았던 사업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세운4구역은 관련 인허가 절차를 마친 뒤 내년 하반기 착공해 2024년쯤 완공될 예정이다.
[나현준 기자 / 이축복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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