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의사 커뮤니티의 민낯...낯뜨거운 성희롱글 난무
입력 2020-05-03 14:29  | 수정 2020-05-10 14:37

의사들의 도넘은 '성희롱·비방' 행태가 의사 사회 최대 커뮤니티 '메디게이트'와 텔레그램·단체채팅방 등에서 대거 포착돼 충격을 안겨준다. 대표적인 지식인층으로 꼽히는 의사들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직업의식을 발휘해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그들만의 소통창구에선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같은 동료 의사들조차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3일 매일경제가 일부 의사들의 협조를 받아 확인한 '메디게이트'에는 환자, 간호(조무)사, 제약회사 여성 영업사원 등에 대한 성희롱 글이 무분별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메디게이트는 지난 1999년 4월 문을 열어 현재 10만명 이상의 의사 회원이 가입한 의사 대표 커뮤니티다. 국내 등록 의사의 80%가 가입했으며, 한주에도 2만~3만명의 회원이 방문한다.


◆의사 최대 커뮤니티 '메디게이트'에 올라온 충격적인 글
이곳에 올라온 성희롱 글의 상당수는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한 회원은 "젊은 여자가 나에게 진료를 받는다. 내가 '입벌려 보세요'라며 라이트로 비출 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본인이 환자를 상대로 상상한 음란 행위를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또 다른 회원은 "막내간조(간호조무사)에게 주사 놓게 여환(여성환자) 바지를 내리라 시켰더니 확 잡아당겨서 XX X이 다 보이게 만든다"며 "막내간조 월급을 인상시켜 줬더니 원장한테 보답한다. 더 올려주면 자기거 보여주는거 아니냐"는 글을 올렸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을 보여준 것이다.

이들은 또 '영우먼(제약회사 여성 영업직원을 지칭하는 은어) X 먹은 이야기 들려줄게' 등 제목의 글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과 얼마나 많이, 어떻게 성관계를 했는지를 과시하는 글을 경쟁적으로 작성했다.
그러면서 '지난주말 학회에서 찍은 영우먼 치마속 팬티' '어제 영우먼이랑 했습니다. 몰카인증샷 첨부' 등 게시글을 통해 불법 촬영이 의심되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실제 불법 촬영이 이뤄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글의 제목과 내용이 일치한다면 성폭력처벌법 위반 사유가 되는 행위까지 자행한 셈이다.
이들의 도넘은 일탈은 성희롱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국민들을 '개돼지'로 비하하거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까지 게시하고 있었다. 이런 움직임은 메디게이트를 넘어 텔레그램방 등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글이 버젓이 올라오는데도 이를 관리하는 운영 주체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자신이 게시한 글이 삭제됐다고 올린 이들이 일부 발견됐지만 4~5년 전의 문제 글이 여전히 게시된 경우가 종종 눈에 띄었다. 오히려 문제의 글들은 5000건에 가까운 조회수, 50건에 가까운 추천을 받기도 했다. 다른 글들이 조회수 300건을 채우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일부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메디게이트 관리자는 "현재 메디게이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보통신 관련 심의규정에 기반한 게시판 운영원칙이 수립되어 있다"며 "해당 원칙에 위반하는 게시글이 확인되면 이에 따라 제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리자는 '성희롱글을 왜 삭제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답을 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한 의사는 "n번방 운영자들만 문제가 아니다"며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일부 의사들의 잘못된 성인식과 일탈이 브레이크 없이 표출되고 있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오픈채팅방 '의사 의대생 수다방'에서도 성희롱글 이어져
의사들의 도넘은 일탈은 '메디게이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행동반경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텔레그램 등으로 넓혀가면서 그들만의 비뚤어진 성인식을 공유했다.
메디게이트에는 지난해 12월 환자에게 거짓으로 진료하고 처방한다는 글이 올라와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난 진료가 다 뻥이다'는 제목의 게시글 작성자는 "어차피 나한테 오는 인간들 진단명도 모르겠고 뭐라고 지껄이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난 뻥쟁이"라며 "MRI 가져오면 그냥 구글같은데 들어가서 아무거나 올려놓고 뻥깐다"고 밝혔다. 댓글엔 "잘하고 있다" "다들 그 정도 뻥은 치고 산다"는 등 동조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외부 사람들이 메디게이트를 살펴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의사들은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의사 의대생 수다방'이었다.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방은 의사면허번호 뒷 3자리, 재직증명서와 신분증의 대조본 등을 인증해야만 활동할 수 있다. 메디게이트가 의사면허증, 면허자격증명서, 기타 의사면허 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 중 하나를 요구하는 것처럼 이곳도 꼼꼼하게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쳤다. 그럼에도 100여명의 의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텔레그램방 '전국 의사 비상 연락망'에도 3300여명의 의사가 참석하고 있다.
이 채팅방에서 역시 여성을 향한 성희롱·비방 발언은 끊이질 않았다. 카카오톡 대화방에서는 "한국 여의(여의사)들 동남아 중국 팔려가 그짓 할 날도 얼마 안남았다" "외로운 남자의사들은 널스(간호사)들 먹잇감" "남자의사가 우울할 때 널스가 나긋나긋 잘해주면 바로 임신테크(임신+재테크의 합성어) 피해자가 된다" 등 채팅이 끊이지 않고 오갔다. 또 어느 항공사 승무원에 대해서는 "(승무원은) 하늘 위에서 술따르는 접대부 수준"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의사 의대생 수다방' 전신은 한의사 비방글 문제된 '의사 고충 상담방'
당초 이 방들은 2018년부터 만들어져 의사들의 '수다'를 위한 방이었다. 다만 가입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대화 주제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 채팅방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의사 고충 상담방'은 이미 여성에 대한 비방뿐만 아니라 의사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것같은 사람에 대한 도넘는 비방을 일삼은 것이 알려져 해체되기도 했었다. 이들의 대표적인 공격 대상은 한의사였다. 대화방 참여자들은 한의사를 비하하기 위해 '한무당', '한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의사에게 치료받는 사람들은 부모가 한무당이거나 창녀 둘 중 하나다" "한의사 면허 있는 사람들 가족들이 제발 잔인하게 칼에 찔려 살해당하기를" 등의 수위 높은 발언이 오고 갔다. 결국 지난해 1월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해당 대화방 캡처본이 유출돼 논란이 되자, 대화방 참여자들은 방을 해체하고 '의사 의대생 수다방'으로 옮겨갔고 비슷한 수위의 발언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단톡방에선 의사 선민의식도 여과없이 드러나
채팅방들은 또 특정 정치세력과 국민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며 특유의 '선민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카카오톡·텔레그램 방에서는 노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어준 씨 등의 합성사진을 조롱하듯 올리는 모습을이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이들은 국민을 '개돼지'로 표현하며 노 전 대통령,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민을 비판했다. 또한 "세무사 변호사같은 전문직엔 돈을 쓰면서 의사한테 돈 쓰는 거는 아까워 하는 종북 헬조선 개돼지들", "명품에 해외여행에는 몇십만원도 펑펑 쓰면서 OECD 최고 의료복지 누리면서 단돈 몇천원에 XXX" 등의 대화가 오갔다.
텔레그램 방 운영자임이 확인된 이모 씨는 매일경제의 취재에 "나는 운영자가 아닌데 잘못 연락하신 것 같다. 다른방과 착각하신 듯 싶다"며 "누구에게 제보받은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학계의 여러 학회 중 하나의 회장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또 '제40대 대한의사협회'라는 이름의 엉뚱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사진을 캡처해 보내며 "나도 아는 게 몇 개 있어서 말씀드리려 했는데 (기자 신분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연락 안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후 취재가 계속되자 해당 텔레그램 방의 제목은 '전국의사 비상 연락망'에서 '메디컬 시사 토론방'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의사 집단의 문제점을 매일경제를 통해 제보한 한 의사는 "의사집단은 매우 폐쇄적이고 보수적인데다가 온라인 상에선 익명성 때문에 공격성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며 "한의사, 치과의사 등 타직종과 갈등도 많기 때문에 비밀 채팅방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비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최상위권 학생들은 대부분 의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전부 '자기가 옳다'는 식의 우월주의나 선민의식이 깔려있다"며 "강압적인 위계질서 때문에 전문의 수련과정에서 벌금을 걷거나 폭력이 오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조성호 기자 /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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