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법농단 외풍' 위안부 피해 소송, 4년 만에 재판 시작
입력 2020-04-24 17:20  | 수정 2020-05-01 18:05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주요 사례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로 외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관련 소송의 첫 재판이 사건 접수 4년여 만에 열렸습니다.

손해배상 소송에 앞서 배상을 요구하는 조정 신청 사건이 접수된 시기를 기준으로 따지면 7년 만입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오늘(24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첫 변론을 심리했습니다.

이 소송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이 2013년 8월 일본 정부에 위자료 1억원씩을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내면서 시작됐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로 차출해 간 데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의 사건 송달 자체를 '헤이그 송달 협약 13조'를 근거로 거부했습니다. 이 조항은 송달 요청을 받은 나라가 자국의 주권이나 안보를 침해할 것이라는 판단이 나오면 송달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내용입니다.

배춘희 할머니 등 소송 원고들은 2015년 10월 사건을 일반 민사합의부로 이송해달라고 요청했고, 법원은 2016년 1월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넘겼습니다.

여전히 송달을 받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재판의 걸림돌이 됐습니다.

재판부는 결국 '공시 송달'(통상적인 방법으로 송달할 수 없는 경우 송달 사유를 법원 게시장에 게시함으로써 송달에 갈음하는 방법) 절차를 밟았고, 이에 정식 재판 접수 4년 만인 이날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일본 측의 면책 논리인 '주권면제론'을 적용하지 않아야 하는 논거가 무엇인지 원고 대리인 측에서 자료를 보완해 내달라고 했습니다. 주권면제론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입니다.

재판부는 "손해배상 소송인 만큼 각 원고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위로 위안부로 동원됐는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위안부 생활을 했는지 등에 관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송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에 부합하고자 재판의 결론을 미리 냈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입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위안부 피해 소송을 분석하고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소송을 각하하거나 개인청구권 소멸을 근거로 기각하는 게 마땅하다는 식으로 시나리오별 판단을 내린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원고를 대리한 김강원 변호사는 이날 재판 후 "돌아가신 할머니들이 결과를 못 봐 아쉬우실 것 같다"며 "우여곡절이 많았고, 재판부가 빨리 판단해줬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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