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핫이슈] 지원금기부 인증 놀이를 하고 싶은 것인가
입력 2020-04-24 09:30  | 수정 2020-05-01 09:37

정부 여당이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고소득층 기부 캠페인을 동시 진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이 정권이 그냥 집권한게 아니다. 총선 180석이 그냥 나온게 아니다. 정치 이벤트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예상하건대 이벤트는 이런 식으로 굴러갈 것이다. 먼저 대통령이 지원금 수급을 거절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청와대 비서실 일동'이 따른다. 국무총리 이하 국무위원들, 여당대표와 주요 당직자들, 각부처 실국장급 간부들이 뒤를 잇는다. 중요한건 민간 영역이다. 이 정부에 친화적인 연예인을 비롯해 소위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퉈 '수급 거절' 인증샷을 SNS에 올린다. 상큼한 미소와 진지한 사회메시지가 뒤섞여 매력을 뿜뿜 뿜어내는 그 인증샷말이다. '#기부 동참'같은 해시태그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뒤덮을 것이다. 그중 적극적인 인사들은 '수급거절 버킷 챌린지'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저 오늘 수급거절했네요. 다음 주자는요. 이런 일에 이분이 빠지면 서운하겠죠? 000님 바통 이어받으시죠.' 그냥 하면 심심할테니 얼음물을 뒤집어쓰든가 하는 눈길 끄는 이벤트를 곁들여야 할 것이다. 걱정할 필요없다. 이쪽으로는 그들이 최고 전문가다.
이쯤되면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난국에 직원들 안자르고 월급 주는 것만도 힘들어 죽겠다고 생각하면 한국에서 기업할 자격이 없다. '000회장 이하 00그룹 임원 일동'이 수급거절 릴레이에 동참했다는 기사가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고 '뭐야 재벌이 고작 100만원?' 이런 반응이 나오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수급거절 외에 자체 조성한 기부금이 더해져야 한다. 그 기부금이라는 것은 재계 서열에 따라 정해진 불문율이 있다. 눈치 봐서 적당하게 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 돈줄에 목숨 건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형편이 아쉬울수록 더 내지를 가능성이 있다. 기부 하고 지원 받고, 돈 내고 돈 먹고.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금모으기 운동으로 IMF국난극복 마중물을 만들었던 위대한 민족이다. 이 정권은 지원금 기부를 제2의 금모으기 운동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 이상일수도 있다. 다섯 덩어리 빵과 두마리 물고기로 운집한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는 '오병이어' 기적의 실사판이 될지 누가 알겠나.

그런데 불편하다. 몹시 불편하다. 나에게 100만원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케이다. 당장 100만원이 아쉬운 형편이 아니므로 그 돈이 나보다 긴급한 취약계층에 돌아갔으면 한다. 일단 주고 알아서 기부하라는 것은 다른 얘기다. '나보다 부자인 모씨는 과연 수급을 거절할까' 이런 치사한 계산을 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가족을 설득할 자신도 없다. '당신 그렇게 부자야?' 이렇게 물었을때 뭐라 답할 것인가.
가장 기분나쁜 것은 자유시민으로서의 내 자유의지가 이벤트화한다는 것이다. 관제 인플루언서들이 기부 인증샷을 올릴 때마다 '내가 저들과 한묶음이 돼야 하나' 하는 거부감이 일게 분명하다. 기부를 하더라도 내 자유의지로, 외부 영향받지 않고 하고 싶다. 내가 100만원 수급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전국민 지급방식에 대한 항의 목적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꼼짝없이 '착한 시민' 대열에 동참하는 결과밖에 안된다. 그렇다고 군말없이 받아쓰자니 예산낭비에 공모하는 기분이 들어 불편하다. 이등시민을 자처하는 것같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착한 시민이 되고 싶지 않다. 무책임한 정부 때문에 내 자유의지가 테스트받는 상황에 화가 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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