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탈리아 봉쇄령 5월 해제 가능성…"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입력 2020-04-05 11:36  | 수정 2020-04-12 12:05

이탈리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부 일각에서 봉쇄 조처의 단계적 완화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검역·방역 대책을 총괄하는 시민보호청의 안젤로 보렐리 청장은 3일 오전(현지시간)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5월 16일부터 집에서 나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활절은 물론 노동절(5월 1일) 휴일에 여행을 계획했다면 포기하는 게 낫다고도 했습니다.

이는 이달 13일까지로 열흘 연장된 전국 이동제한령과 휴교령, 비필수 업소·영업장 폐쇄 등 대대적인 봉쇄 조처가 5월까지 이어지리라는 것을 시사하면서 5월 중순 일부 해제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것입니다.


봉쇄 해제와 더불어 감염자 또는 감염의심자 추적·격리 등의 방법으로 바이러스 추가 확산을 최대한 억제하는 '2단계 대응책'을 공식 언급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그는 봉쇄 기한 등이 특정된 자신의 발언이 정부 안팎에서 논란이 되자 "구체적인 날짜를 언급한 게 아니다"라며 공식적으로 봉쇄령은 이달 13일까지라고 해명했습니다.

이탈리아 정부도 봉쇄령 추가 연장이나 해제 시점 등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방역 책임자인 그의 지위와 역할 등에 비춰 정부 내부에서 2단계 대응에 대해 상당히 세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세페 콘테 총리도 이달 2일 스페인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를 관리하는 새로운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며 "봉쇄 조처를 일부 완화하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탈리아 정부의 2단계 대응론은 그동안의 봉쇄 조처를 통해 일단 코로나19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상황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달 한때 5천∼6천명대로 고공 행진하던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최근 엿새간 4천명대 중·후반 수준으로 정체된 상태입니다. 확진자 증가율도 한창때는 10%를 넘어가다 현재는 4% 안팎으로 안정돼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이 이미 정점에 도달했으며, 내리막으로 가는 변곡점에 와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둔화한다는 징후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이탈리아 정부로선 봉쇄 조처 장기화에 따른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올해 이탈리아 경제가 기록적인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탈리아 경제인연합회인 '콘핀두스트리아'(Confindustria)는 봉쇄령이 5월 말까지 이어진다는 전제 아래 국내총생산(GDP)이 상반기에는 약 10%, 올해 전체로는 6%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봉쇄령이 한주 연장될수록 GDP 0.75%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금융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은 2009년 이래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이 전날 발표한 3월 제조·서비스업 복합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경기 침체를 예고했습니다.

이탈리아의 3월 PMI 지수는 20.2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2월 50.7에서 무려 30포인트 이상 폭락한 것입니다.

PMI는 기업의 구매 책임자들을 설문해 경기 동향을 가늠하는 지표로, 50보다 크면 경기 확장을 의미하고 그보다 작으면 경기 수축을 나타냅니다.

영역별로 보면 제조업은 51.3에서 18.4로, 서비스업은 52.1에서 17.4로 각각 추락했습니다. 두 영역 모두 역대 최악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 터널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다시 주저앉는 모양새입니다.

이탈리아발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까지 나오는 최악의 경제 현실 속에서 봉쇄령을 마냥 연장할 수만은 없는 처지인 셈입니다.

다만, 코로나19의 그래프가 완전히 아래로 꺾이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봉쇄령을 풀었다가는 바이러스가 재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아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양새입니다.

행여나 바이러스가 다시 들불처럼 일어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시행한 봉쇄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병의 속성상 전망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 요소입니다.

이탈리아 정부 내에선 바이러스 확산 거점인 북부 지역의 바이러스 기세가 기대했던 만큼 빠르게 누그러지지 않는 데다 남부 지역 확산세도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며 조심스럽게 다음 행보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설사 봉쇄 조처를 푼다고 해도 조기에 일괄적으로 해제하기보다는 경제의 중추인 생산 활동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 비필수 제조업 사업장을 먼저 해제하고 상황을 봐가며 다음 조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일단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두고 지역별 상황을 정밀 분석한 뒤 오는 10일 내각 회의를 열어 봉쇄령을 13일 이후로 연장할지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안팎에서 봉쇄령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가운데 언제가 됐든 봉쇄를 푼다면 바이러스 억제 성패는 결국 이탈리아 정부의 방역 능력에 달렸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정부도 향후 봉쇄령 해제에 대비해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방안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광범위하고 공격적인 바이러스 검사, 감염자 및 감염 의심자 동선 정밀 추적·격리 등을 뼈대로 하는 한국형 모델이 정부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거론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는 분석입니다.

실제 이탈리아 정부는 정보통신을 비롯한 각 분야 전문가 74명 규모로 코로나19 위기 대응 전담팀을 구성해 감염자 동선 추적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봉쇄령 이후 2단계 대응책의 하나로 한국형 모델에 더해 사회적 거리 두기 상시화,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날 기준 이탈리아의 누적 확진자 수는 12만4천632명으로 전 세계에서 미국, 스페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습니다.

또 누적 사망자 규모는 1만5천362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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