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고통스러운 죽음의 악몽…기댈 곳이 없다" 유럽의 절규, 이탈리아 코로나 1만명·스페인 5000명 사망
입력 2020-03-29 09:56  | 수정 2020-03-30 08:48
27일 저녁(현지시간),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바티칸 시국 내 텅 빈 성베드로광장 제단을 향해 홀로 걸어가는 프란치스코 교황. [출처 = 로이터·아르헨티나 인포바에]

"짙은 어둠이 광장과 거리, 도시를 뒤덮고 먹먹한 침묵과 허무가 삶을 사로잡았습니다…부디 세상을 축복하시고, 건강을 주시고, 마음의 위안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봄비 내린 금요일 저녁, 텅빈 성베드로 광장에 선 교황의 슬픈 기도에 전세계가 눈물을 떨궜다. 하지만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는 유럽에서만 또 다시 수천 명 목숨을 앗아갔다.
중국발 코로나19는 28일(현지시간)유럽에서만 또다시 최소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폐를 찌르는 듯한 고통스러운 죽음이 집중된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에서는 의료 장비와 시설마저 부족해 더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현장 절규가 나온다. 그림은 `절규`(에드바르 뭉크, 1893년, 유화) [그림 출처 = 오슬로 국립...
유럽에선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피해가 치솟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보건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돌파했다. 이탈리아 확진자 수는 총 9만2472명, 사망자 수는 1만23명이다. 전세계 코로나19 사망자가 3만 여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탈리아가 3분의 1에 달한다.
이날 이탈리아 치명률(전체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10.84%로 전세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 새 사망자(889명) 증가율이 9.7%로, 확진자(5974명 증가·6.9%↑)보다 증가세가 빠른 탓에 치명률도 올랐다. 희망을 찾는다면 확진자 하루 증가세가 처음으로 7%를 밑돌면서 다소 수그러드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오는 31일 이탈리아에선 전국 시청에 조기가 게양된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북부 롬바르디아 주 베르가모 시가 오는 31일 조기 게양과 묵념을 통해 희생자를 추모하기로 하자 다른 지역이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 베르가모 시 인근 폰테 산 피에트로 지역 창고에 코로나19로 숨을 거둔 이들의 관 35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베르가모에서는 시신 둘 곳 뿐 아니라 24시간 가동하는 화장터 마저 모자라 군용 트럭이 다른 지역으로 시신을 옮기기도 한다. [출처 = 게티이미지·미국 CNN]
'죽음의 도시' 베르가모 시에서는 화장장을 24시간 가동해도 넘쳐나는 시신을 감당하지 못해 군용 차량을 동원해 관을 다른 지역으로 실어나르는 영상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트(SNS)를 통해 퍼지면서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부고 기사가 지면 전체에 빼곡히 적힌 지역 신문이 나부끼고, 병원 영안실에 시체 둘 공간이 없어 성당에까지 관이 들어차는 비참한 상황이 하루 하루 이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탈리아 정부가 다음 달 3일까지인 전국 이동제한령(국내 봉쇄령)과 휴교령을 2주 정도 더 늘릴 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봉쇄·휴교령 연장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주세페 콘테 총리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조만간 정점에 달해 하강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어 실제 연장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현지 레푸블리카 신문과 미국 블룸버그 통신 등이 전했다.
`20세기 최고 거장` 스페인 추상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년)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을 비행기로 폭격한 참상을 보고 절규하며 그린 유화다. 지난 22일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지금 코로나19 확산은 1936~1939년 내전 이후 최악"이라고 말했다. [출처=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
이웃 나라 스페인에서는 같은 날 사망자가 5000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하루 사이 800명 넘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목숨을 잃은 탓이다. 코로나19에 따른 스페인 사망자는 지난 25일부로 발원지인 중국을 추월해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다.
28일 오후 6시 기준 보건부에 따르면 사망자는 총 5690명으로 전날보다 832명 늘었고, 확진자는 총 7만2248명으로 전날보다 8189명 급증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각 국 보건당국 추가 보고 등을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날 스페인 피해(확진자 총 7만2335명, 사망자 총 5820명)는 더 크다.
이달 11일 이후 스페인에서는 하루 단위 코로나19 사망자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절망감이 커지고 있다. [출처 = 스페인 보건부·엘 파이스 신문]
스페인 피해가 늘어나는 배경으로는 크게 세 가지 사건이 꼽힌다. 가장 먼저 있던 사건은 지난 달 19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로피안 챔피언스 리그 축구 경기다. 이날 스페인 발렌시아와 이탈리아 아틀란타 간 경기에는 발렌시아 팬인 스페인 시민 3000여명이 밀라노로 원정 응원을 갔고 이탈리아 측에선 베르가모 시민 등 총 4만 여명의 이탈리아인들이 경기장을 찾아 집단 감염 도화선이 됐을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 추측이다.
두 번째 주요 사건은 지난 11일부로 마드리드 시내 대학 등 학교가 폐쇄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젊은 층이 대거 해변이나 클럽 등을 찾아 즐기는 과정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산체스 총리가 인정했 듯 연방정부와 '독립'을 외치는 카탈루냐 지역 정부간 정책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세번째 배경이다. 마드리드와 카탈루냐는 사망·확진자를 통틀어 스페인 피해 규모의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전한 바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펠리페 6세 스페인 왕이 마드리드 대형 박람회장 이페마(Ifema)를 찾아 군인들이 박람회장을 병실로 바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출처 = 스페인 왕실]
하루 하루가 코로나19 정점인 날이기를 바랐던 스페인 정부는 28일, 하는 수 없이 '2주 간 경제 활동 자제령'을 발표했다고 현지 신문 엘 파이스가 전했다. 이날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4700만명의 스페인 시민들께 말씀드린다. 정부는 오는 30일부터 4월 9일까지 근로자들이 급여를 받되 출근하지 않고 집에 머무르도록 하는 조치를 내일 발동할 것"이라면서 "확진자, 특히 중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한 것이므로 시민들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화상을 통해 밝혔다. 이번 조치에서 의료기관이나 약국 등 필수 사업장은 예외다.
중국발 코로나19 탓에 스페인은 '1936~1939년 스페인 내전 이후 최악'상황을 맞았다. 의료 시스템이 한계에 치닫고 있다. 지난 17일 산체스 총리가 '15일간 민간 의료기관 국영화'를 선언한 데 이어 '의료인 5만명 현장 참여'(졸업하지 않은 의대·간호대 학생 포함)를 요청한 상태지만 공간도, 장비도 부족하다. 피해가 집중된 수도 마드리드에선 특히 병상이 모자라다. 간호사 노동조합에 따르면 병실이 모자로 침대 대신 휠체어에 앉은 채로 사흘을 기다리는 환자도 있다. 라파스 병원에선 환자들이 주차장에 설치된 텐트에 누워 차례를 기다린다. 병원 측이 딸린 체육실과 대기실을 응급실로 개조했지만 병상이 모자란 탓이다. 세베로 오초아 병원도 환자들이 24시간 가까이 복도에 무방비 상태로 드러누워 대기줄을 선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나날이 늘자 지난 24일(현지시간)부터 마드리드 소재 아이스링크인 `얼음 궁전`(Palacio de Hielo)이 시신 안치실로 바뀌었다. [출처 = 유로파프레스]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스페인도 이탈리아처럼 장례식장 확보 비상이 걸렸다. 보건부는 지난 27일 장례식장 부재에 따른 군 동원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군은 당일 공공건물을 제2 영안실로 개조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앞서 수도 마드리드 소재 아이스링크인 '얼음 궁전'(Palacio de Hielo)에 마련된 임시 영안실에 83구의 시신을 옮겨둔 상태다.
의료 장비도 턱없이 모자란다. 28일 스페인 사라고사 공군기지에서는 A400M 수송기가 중국 의료 장비를 실어오기 위해 상하이로 떠났다. 보건부가 중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대량 사들였다가 정확도가 30%밖에 안돼 낭패를 봤지만 일단 계약한 마스크와 호흡기 등 다른 물품이라도 긴급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이야 보건부 장관은 25일 "중국에서 4억3200만 유로(약 5760억8900만원) 어치 의료 장비를 사들이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에는 마스크 5억5000만 개와 호흡기 세트 950개, 의료용 장갑 1100만 개 뿐 아니라 진단 키트 550만 개가 포함됐었다.
한편 같은 날인 28일, 프랑스에서도 코로나19 사망자 규모가 2000명을 넘어섰다. 보건부에 따르면 사망자는 총 2314명이다. 하루 새 319명이 또 목숨을 잃은 결과다. 확진자는 총 3만7575명으로 전날보다 4611명 늘어났다.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시간 싸움을 하고 있다"면서 "지나간 2주보다 앞으로의 2주가 더 힘겨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리비에 베랑 보건장관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마스크 10억 장을 주문했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된다.
28일(현지시간)기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가 각 국 보건부 발표와 추가 사항을 집계한 코로나19피해 현황.코로나19 탓에 발원지인 중국을 제외하면 이탈리아·스페인·이란·프랑스 순으로 사망자가 많다.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가 관심을 기울였던 '중국몽'(中國夢)은 코로나19판데믹(전세계 대유행) 속에 '악몽'이 되어 돌아왔다. 중국몽은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중심 경제협력벨트)를 통해 중국이 21세기 세계 중심이 되겠다는 시진핑 국가 주석의 구상이다.
최근 중국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해 마스크 원조와 의료진 파견을 시작으로 진단 키트 등 자국 의료장비 판매에 나섰다. 중국의 지원은 두 나라가 코로나19판데믹으로 고통받는 동안 유럽연합(EU)이나 동맹국인 미국이 별다른 지원 의사를 보이지 않는 틈새를 이용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3월 23일 중국과 일대일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코로나19판데믹 전까지는 한해 중국인 관광객 수백만명이 이탈리아를 찾았고, 수도 로마의 트레비 분수같은 유명 관광지에서는 중국과 이탈리아 경찰이 순찰을 함께 돌기도 했다. 현재 중국은 자국 의료진을 롬바르디아 일대에 파견하고 마스크 200만 개 등 방역 물품을 지원하는가 하면 진단 키트 등 의료 장비를 수출 중이다.
28일(현지시간) 스페인 사라고사 공군기지에서는 A400M 수송기가 중국 의료 장비를 실어오기 위해 상하이로 떠났다. [출처 = 엘 파이스]
스페인은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2018년 11월 시진핑 주석이 마드리드에 국빈 방문해 일대일로를 위한 돈다발 외교를 본격화 했다.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원양해운(Cosco)이 스페인 발렌시아와 빌바오 항만 운영 기업 지분 절반 가량을 인수했고 중국 저장성 이우 시와 마드리드를 잇는 철도 노선도 개통됐다. 지난해 4월 호세프 보렐 스페인 외무장관이 중국에서 열린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고위포럼'에 참석해 '원칙이 지켜진다면 스페인도 일대일로 사업에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프랑스도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해 3월 25일 시진핑 주석은 파리에 국빈 방문해 에어버스 300대 구매 계약 등 총400억 달러 어치 경제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탈리아와 25억 유로 규모 경제협력을 체결한 지 불과 이틀 만이지만 16배 많은 금액이다.
[김인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