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코로나 확진자 1명도 없는데…혐오 대상 전락한 차이나타운
입력 2020-02-17 15:30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사는 한원섭씨(가명·28)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사람들에게 사는 곳을 밝히는 게 꺼려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대림동이 중국동포가 많기로 유명하다보니 (사는 곳을 밝히면) 코로나19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바이러스가 발생한 동네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 700명이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전원 퇴소하는 등 탈(脫)코로나 분위기가 점차 자리잡고 있지만 중국 동포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혐오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된 중국 동포들과 중국인 유학생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져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중국 동포들은 단지 서울 대림동, 가리봉동, 화양동 등 '차이나타운'에 거주한다는 자체만으로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는 데 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거론된 중국 동포 밀집 지역에서는 아직 한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지도 않았고, 확진자들이 거쳐갔다는 정보도 없지만 막연한 공포가 확산되며 사람들이 찾지 않는 '외딴 섬' 같은 처지에 놓였다.
서울의 한 차이나타운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점주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 수 자체가 확연하게 줄어 차라리 임시휴업을 하는 게 나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된다"며 "마스크 착용을 비롯해 직원들 청결에 항상 신경 쓰고 있지만 종업원끼리 중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가게를 나가는 손님도 있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력사무소에는 중국 동포 대신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동포를 찾는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다. 대림동에 있는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사·육아도우미처럼 일상생활에 밀접한 직업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 농촌에서도 중국 동포를 꺼려한다"며 "몽골 등에서 온 동포들도 사실은 대림동 일대에 많이 살지만 중국과 연관이 없다는 점만으로 찾는 이유가 된다"고 전했다. 이삿짐센터, 청소업체 등에서도 손님들이 계약에 앞서 직원 중 중국 동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전염병이 창궐해 비이성적 사회 갈등이 심화될 경우를 대비한 '심리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감염병 대응은 바이러스에 대한 역학적 방역과 함께 심리방역이 중요하다"며 "정부와 전문가, 언론, 시민사회 간 효과적인 위기 소통 네트워크를 마련해 감염병 상황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인 판단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고통받고 소외됐던 이들을 포용하는 사회통합 노력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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