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이란 이어주는 '우체부' 스위스 "긴장 완화에 큰 역할"
입력 2020-01-11 17:05  | 수정 2020-04-10 18:05

미국과 이란이 살벌한 설전을 벌였지만, 전쟁으로 치닫지 않은 배경에는 스위스의 역할이 있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현지시간으로 어제(10일) 전했습니다.

WSJ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3일 이란 군부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 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몇 시간 뒤 스위스를 거쳐 이란에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국교를 단절한 미국과 이란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의 암호화 팩스 기계입니다. 이 특수한 팩스를 사용할 수 있는 열쇠는 오직 최고위직만 갖고 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합니다.

미국의 입장이 담긴 암호화된 팩스를 전달받은 마르쿠스 라이트너(53) 스위스 대사는 같은 날 오전 일찍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 장관을 만나 이 편지를 직접 전달했습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자리프 장관의 반응이 격정적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을 "깡패"(bully)라고 부르며 "모든 문제의 원인은 미국"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자리프 장관은 다음날인 4일 라이트너 대사를 불러 미국에 전달할 메시지를 건넸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자리프 이란 외무부 장관이 트위터에서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은 날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보복에 나선다면 이란의 문화 유적시설 등 52곳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자리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며 "테러 분자"라고 힐난했습니다.

국민감정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트럼프 대통령과 자리프 장관이 각종 수사로 포장된 언쟁을 주고받는 사이 라이트너 대사는 미국과 이란이 상대방의 솔직한 속내를 파악할 수 있는 매개자 역할을 한 것입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는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메시지가 오갔고, 연설이나 인터뷰 등 대중에게 공개되는 발언 수위와 비교해보면 한층 신중한 태도가 곳곳에서 묻어났다고 합니다.


미국과 이란은 양국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가교 구실을 하는 스위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은 1980년부터 40년 가까이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고위당국자는 "미국이 이란과 소통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면 스위스가 중간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양측이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유엔 주재 이란 대표 대변인은 "필요할 때 (미국과) 편지를 교환할 수 있는 효율적인 채널을 제공해주는 스위스 당국의 모든 노력에 감사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스위스 외교관들은 그들의 역할을 "우체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한 전직 대사는 "우리는 세계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며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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