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12·16대책날 `초치기 계약`…"규제 피했다! 휴~"
입력 2019-12-17 17:59  | 수정 2019-12-17 19:45
2주 전 서울 마포 래미안 웰스트림 59㎡형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은 직장인 김 모씨(37)에게 지난 16일 급작스럽게 부동산에서 전화가 쇄도했다. 주말에 간간이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은 더러 있었지만 이날은 여러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겠다며 동시다발적으로 연락이 왔다.
이날 정부는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대출을 금지하고, 9억원 초과 주택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새로운 대출규제가 바로 다음날부터 적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주택 매수자가 몰려들었다.
결국 세 팀이 치열하게 경합한 끝에 한 팀이 종전 신고가보다 1억4000만원이나 높은 13억3000만원을 제시해 매수했다. 단 '오늘 계약서를 작성한다'는 조건이었다. 매수인은 정부의 대출규제가 발표 다음날인 17일부터 적용되므로 16일에 무조건 계약서를 써야 한다며 신고가에도 계약을 진행했다.
김씨는 "집이 갑자기 팔린 데다 신고가로 계약돼 얼떨떨하다"며 "대부분 사람들이 은행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데, 대출을 막거나 줄인다고 하니까 집 구매를 염두에 둔 사람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실제로 곳곳에서 시간을 다투는 '초치기 계약'이 일어났다.
1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16일 9억원 초과 아파트 매매 계약은 4건 등록됐다. 서울 서초구 반포리체 전용 84㎡형은 25억5000만원에 계약됐고, 동작구 본동 래미안 트윈파크 전용 115㎡형은 16억5000만원에 손바뀜됐다. 2건 모두 하루라도 늦게 계약했으면 대출을 받지 못할 뻔했다.
계약 후 60일 이내 등록하는 것을 감안하면 16일 실제 이뤄진 고가 아파트 계약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계약된 건은 모두 강화된 대출 규제가 적용되기 전이라 집값(KB시세 기준)의 4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서울 강남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부 대책이 나올 것을 예견한 투자자들은 매물을 봐놓고 계약금을 준비한 뒤 정부 발표가 나자마자 그날 계약서를 작성하는 조건으로 순식간에 계약했다"며 "아파트 구매에서 대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는 아파트 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대출이 금지된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 한도가 축소된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아파트를 매수하려면 자금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5억원을 전부 자기자본으로 마련할 수 있는 서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사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15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는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110㎡형은 동과 층수에 따라 12억5500만~16억4000만원에 거래된다. 만약 KB·감정원 시세 기준 같은 크기의 아파트가 15억100만원이고, 또 다른 아파트는 15억원이라면 후자가 대출이 나오니 더 빨리 매매될 가능성이 높다. 15억100만원짜리는 100% 전액을 자기자본으로 마련해야 하나, 15억원 아파트는 9억원분의 40%와 초과분(6억원)의 20%인 총 4억8000만원을 은행에서 빌릴 수 있다. 자기자본 10억2000만원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다.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아파트도 15억원 초과 아파트보다는 거래량이 늘겠지만, 거래 위축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9억원 초과분에 대해 LTV 20%가 적용돼 대출 가능 금액이 축소된다. 12억원일 경우 초과분 3억원에 20%가 적용돼 총 4억2000만원 대출이 가능하다. 12억원 대비 LTV 35%가 적용되는 꼴이다. 15억원은 총 4억8000만원이 가능해 LTV 32%가 적용되는 셈이다.
권 교수는 "한마디로 정부가 빚내서 집을 사지 말라는 얘기"라며 "9억원 초과분에 20% 대출 한도가 적용되는 것은 상당한 심리적 위축을 불러일으킨다. 요즘 서울 집값이 다 크게 올라서 실수요 서민들이 집을 사기 더욱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이선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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