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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그만 좀 물어요, ‘천문’
입력 2019-12-17 07:30  | 수정 2019-12-17 09:57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친절도 과하면 부담스럽다. 위대한 역사 뒤편의 뭉클한 이야기에 감동 받을 새가, 여운을 남길 틈도 없다. 말은 많고 반복은 더 많으니 ‘여백의 미는 일찌감치 실종됐다. 여기에 진함을 넘어 찐득한 브로맨스까지 더해져 한껏 눅눅해진, ‘천문 : 하늘에 묻는다다.
영화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과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실제로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며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그 결과 조선의 과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하지만 세종이 타는 가마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세종은 장영실을 문책하며 궁 밖으로 내치고 그 이후 장영실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천문은 이 같은 역사적 기록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생사는 물론 발명품의 제작 자료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도록 돌연 의문을 남긴 채 사라진 이유에 대해 영화적 상상력을 입혀 완성한 것.
‘뿌리 깊은 나무에서 이미 울림 있는 세종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한석규가 다시 한 번 세종을, 변화무쌍한 도전으로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최민식이 장영실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여기에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덕혜옹주 등으로 ‘멜로의 거장으로 불리는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선수들이 뭉쳤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물은 기대 이하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업적을 기반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지만 고증 그 자체가 주는 울림 외 전략은 대부분 실패한 모양새다.
널리 알려진 세종의 애민정신과 평등사상에 대한 감독의 메시지를 비롯해 분노 유발 대신들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는 진함을 넘어 찐득거린다.
숨겨진 이야기라 전면에 내세우기엔 그다지 새로운 상상력이랄 게 없고 그것이 알차게 혹은 흥미롭게 그려지지도 못했다. 오히려 인물들의 성격과 배경, 각종 위험 속에서 이뤄낸 결과만으로도 두 사람의 진한 우정과 정신, 열정 등이 충분히 설명되지만 감독은 그 어떤 여백의 미와 사색의 시간을 주지 않은 채 과도한 양의 대사와 지나치게 감성적인 질의응답으로 132분을 지루하게 채운다.
조연들의 진부한 쓰임새 역시 아쉬움을 더한다. 특히 정체불명의 전여빈은 등장부터 퇴장까지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최대의 미스터리.
잘 만들어진 역사 다큐 한 편보다 못한, 위대한 역사를 소재로 한 155억 짜리 지루한 휴먼 드라마다. 오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2분. 손익분기점은 380만 명이다.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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