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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고의 날, 제자들에 사과한 승부사 “그땐 미안했어”
입력 2019-12-11 05:30 
제자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의 팔순연이 10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렸다. 사진(서울 청담동)=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서울 청담동) 이상철 기자
오늘은 내 생애 최고로 기쁜 날이다. 하지만 너무 미안해 죽겠다.”
제자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팔순연에서 김응용(78)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의 웃음꽃이 피웠다. 훈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 회장의 속마음은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더 컸다. 독하게 가르치며 해태 타이거즈를 당대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길렀지만,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었다.
지난 10일 김 회장의 팔순연이 열렸다. 그냥 (내년 4월에) 가볍게 밥 한 끼나 먹자”라는 김 회장의 만류에도 이순철 SBS 해설위원,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밀어붙이며 만든 ‘특별 행사였다. ‘영원한 스승 김 회장의 팔순 잔치를 빛내기 위해 야구인 100여명이 자리했다.
김 회장이 지도한 제자들은 한국야구의 기둥이 됐다. 지금도 중심축에 있다. 김 회장은 한국야구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있어 길이 남을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감독님의 인생이 곧 한국야구의 역사입니다. 한국야구는 감독님과 함께 언제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코끼리 감독, 김응용이라는 이름도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오래도록 야구장에 울릴 것입니다”라고 축전을 보냈다.
그렇지만 김 회장은 ‘감사하다는 말보다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는 내가 너무 괴롭혀서 두들겨 맞을 각오로 오늘 왔는데 진심으로 내가 너무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제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릴 생각까지 했다는 ‘코끼리 감독이다.

김 회장은 벌써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8년째가 됐다. 벌써 그렇게 됐다. 내 생애 최고의 기쁜 날이다. 그렇지만 과거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너무 미안해 죽겠다. 프로야구의 ‘프자도 모르던 때였다. 그때는 내가 너무 했던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1983년 해태의 지휘봉을 잡은 김 회장은 2000년까지 호랑이 군단을 이끌며 통산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안겼다. 승리를 쟁취하는 승부사였지만 선수를 위한 지도자는 아니었다는 게 김 회장의 회상이다.
김 회장은 프로야구가 아니라 실업야구처럼 팀(해태)을 운영했다. 프로야구는 돈이 중요하지 않은가. 출전 기회도 주고 개개인의 성적도 챙겨줘야 하는데, 오로지 이기기 위한 야구만 했다. 오늘 지면 죽는다는 각오였다. 2군도 가장 늦게 만들었고, 요즘같이 데이터 야구가 어디 있나. 그냥 감독 마음대로, 내 감으로 했던 시절이다. 내가 프로야구를 더 연구하고 공부했다면, 저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머릿속에 미안한 생각만 가득하다”라고 말했다.
옛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김 회장은 5-0으로 리드한 5회, 방수원이 3점을 내줬다. 아웃 카운트 1개만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충족하는 상황이었다. 방수원이 교체되기 싫어 2루로 도망갈 정도였지. 내가 참아야 했는데 (이기고 싶은) 내 욕심에 그냥 투수를 교체했다. 1승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내가 좀 너무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 미안했다”라고 전했다.
김 회장은 큰절 대신 사과를 했다. 마음 단단히 먹었다는 그는 제자들에게 불평, 불만을 마음껏 하라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김 회장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김 회장의 지도 덕분에 야구인으로 바르게 컸다는 걸 모두가 깨닫고 있다. ‘미안하다는 김 회장의 말에 제자들은 ‘감사하다고 답했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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