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금감원 `종이통장 유료화` 재검토한다
입력 2019-10-03 17:22  | 수정 2019-10-03 20:13
금융감독원이 내년 9월을 목표로 추진해온 '종이통장 유료화' 정책에 대한 재검토에 나선다. 무통장 거래 관행이 비용 부과라는 강제 수단 없이도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앞서 금감원이 2015년 발표한 '종이통장 발행의 단계적 감축' 3단계 방안에 따르면 종이통장 발급을 원하는 고객은 내년 9월부터 은행에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현재는 신규 계좌 개설 시 종이통장 미발행을 원칙으로 하되 고객이 원하면 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지만, 유료화가 시행되면 통장 발행에 최소 2000원 수준의 비용을 고객이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금감원은 해당 계획이 수립된 2015년 이후 급속한 디지털화가 추진된 점 등을 감안해 단계적 실행안을 세부적으로 다시 검토할 계획이다. 당국 관계자는 "당시에는 종이통장에 비용을 부과해서라도 거래 관행을 바꾸려 했던 것인데, 지금은 비대면 거래가 보편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통장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며 "전체적인 발급 추이와 고객·금융사 의견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예·적금 등 수신 상품의 종이통장 발급 건수는 총 1097만3735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1219만694건 대비 약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누적 기준으로는 2017년 2395만건, 지난해 말 2271만건 등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비대면 금융 거래는 큰 폭으로 늘었다. 한국은행의 금융정보화 추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모바일뱅킹을 통한 은행 금융서비스 업무처리 비중은 53.2%로,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절반을 넘겼다. 모든 은행이 종이통장을 대체할 수 있는 '모바일통장' 서비스를 제공 중이고, 더 나아가 최근에는 아예 통장·비밀번호 등 없이 개인 생체정보만으로 출금이 가능해졌다. KB국민은행이 손바닥 정맥 인증만으로 예금을 인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금감원의 재검토 방침에는 아직 종이통장을 선호하는 고객이 많다는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전체 통장 발행 건수는 줄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신규 계좌 대비 통장 발행 비중은 높기 때문이다. 한 대형 시중은행에서는 올 상반기 개인 신규 256만6000계좌 중 49.3%에 달하는 126만5000건이 종이통장을 발급받았다.
법인의 통장 선호도는 훨씬 높다. 이 은행에서 같은 기간 개설된 신규 법인 계좌 중 3.5%인 단 3000건만이 통장을 발행하지 않았다. 여전히 법인의 96% 이상이 종이 통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익숙한 종이통장을 모바일 매체보다 신뢰하는 고객들의 심리적 요인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중견업체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거래 업체 중에는 여전히 종이통장을 보관하며 수기 장부를 만드는 곳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료화 시행에 반감을 가진 여론도 부담이다. 금감원은 유료화가 시행되더라도 60대 이상 고령층에게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디지털 금융에 익숙지 않은 고객은 불편을 겪을 수 있다"거나 "은행 수수료 이익을 늘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장 관리 비용과 업무 효율화 등을 따지면 점차 사라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당장 비용을 부과하기에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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