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6월 25일 뉴스초점-교과서를 몰래 고치다니
입력 2019-06-25 20:10  | 수정 2019-06-25 20:35
'민원 좀 만들어보세요.'

2017년 9월, 교육부의 교과서 정책과장은 교육연구사에게 다소 수상한 지시를 합니다. 민원이 있었다는 걸 근거로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뜯어고치기 위해, 그러니까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교육부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민원 만들기까지는 성공했지만, 교과서의 집필 책임자가 '못 고치겠다'고 한 겁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뜯어고칠 수 없다는 거였죠. 그래도 교육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집필 책임자 몰래 교과서 내용을 바꾸고 서류를 위조했거든요. 이 과정에서 집필자의 도장까지 몰래 찍었지요.

결국 교과서는 213군데나 바뀐 뒤 전국의 43만3,700명의 초등학생에게 배포됐습니다.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뀌었고, '유신체제'는 '유신독재'로, '새마을 운동' 사진은 아예 빠졌죠. '북한은 여전히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부분 역시 삭제했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현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표현들이 수정된 겁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런 엄청난 일을 실무진 두 명이 알아서 벌였다고 합니다. 지난해 3월 집필 책임자의 폭로로 논란이 불거졌고 이로 인해 국회에 나온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은 그저 모르쇠로 일관했죠. 중하위직 두 명이 지침도 없이 스스로 범죄를 저질렀고, 그들이 최종 책임자라는 겁니다.

김상곤 교육부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적폐·국정 농단'으로 규정하고 1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 교육문화수석 등 고위직이 대거 포함됐었죠. 그런데 지금은 실무진에게만 모든 책임이 있다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걸까요.

5년이면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정부가, 역사에 손을 대서 성공한 사례는 없습니다. IMF로 끝난 YS의 '역사바로세우기',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 논란을 겪어 보고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건지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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